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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Oct 04. 2023

폴댄스 일지

Day1. 하얀 공간, 은색 폴

2023.10.04.11:00


폴댄스를 처음 해봤다.

방향감각 없는 몸치인 내가 과연 오늘 배운 첫 동작을 따라갈 수 있을까

선생님이 첫 기초동작 시범을 보여주셨을 때

'과연 내 몸이 알맞게 움직여줄까?' 생각했다.


왼쪽 다리를 밖으로 뻗어서 양 다리를 ㅅ(시옷)자가 되게끔 만들어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내 나름의

ㅅ(시옷)자를 만들어보겠다고 양 다리에 힘을 주고 어영부영 어딘가로 두 다리를 뻗었다.

하지만 내가 뻗은 그 쪽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었다.

첫 동작부터 몸둥이가 뚝딱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다른 수강생들의 동작을 교정해주시는 동안 혼자서 첫 동작을 연습해봤다. 팔다리가 바삐 서성였다. 선생님이 보여준 시범동작에 내 몸짓이 가닿지 못하자 급기야는 'ㅅ(시옷)자가 뭘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영부영 움직이다가 기운이 빠진 나는 자리에 앉아 개인 연습을 하고 있는 옆자리의 다른 수강생을 힐끔 쳐다보았다. 나와는 달리 한결 여유로워보였다. 다른 사람의 몸짓을 가만히 바라보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오전 11시

탁 트인 유리 통창에 환하고 따뜻한 햇빛이 들었다.

하얀 공간, 은색 폴, 얼굴이 붉게 상기된 사람들.

처음 와본 공간이지만 이 가을 아침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다시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이 두 번째 기본 동작을 가르쳐주시려 나에게 다가왔다.

'난 아직 첫 번째 동작도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두 번째 동작은 오른쪽 다리의 오금을 폴에 감아 힘을 꽉 주고 도는 거였다. 이때 왼쪽 발끝은 폴에 가깝게 붙여 돌아보라고 하셨다. 살면서 처음 해보는 동작에 뇌정지가 온 듯 선생님의 코칭이 머리에 입력되지 않았다.


이어서 세 번째 동작은 그렇게 돌다가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 위에 같이 포갠 후 한 번 더 돈 뒤, 왼팔을 폴에서 떼어 천천히 원을 그려보는 거였다.


아직 첫 번째 동작도 머리에 제대로 입력이 되지 않은 나에게 세 번째 동작에까지 이르는 건 오늘 중엔 불가능할 것 같아 보였다.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고 가신 후 나는 또 철푸덕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몇 분 후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ㅅ(시옷) 모양으로 다리를 뻗으라는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알게 됐다. 폴을 양 손으로 꽉 잡고 메달린 채, 양 다리에는 힘을 쭉 빼고 바깥으로 다리를 뻗어 돌라는 말이었다. 가장 간단한 그 기본동작이 드디어 머리에 입력이 되었다.


이어서 두 번째 동작도 다시 연습해보았다.

이건 첫 번째 동작에서와 달리 오른쪽 오금을 폴에 감아 지탱해야 하므로 다리에 힘을 꽉 주어야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두 번째 동작에 성공했다.


이어 세 번째 동작도 할 수 있게 됐다.


수업의 마지막에 이르러 선생님이 수강생들의 핸드폰으로 한 명, 한 명 각자가 오늘 배운 동작을 다른 수강생들 앞에서 시범 보이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주셨다.


나는 처음에 원하는 사람만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는 건가 싶어서 "저는 안 찍어주셔도 괜찮아요."라고 말했는데, 선생님은 "하면서 전보다 얼만큼 향상되고 있는지 알 수 있게끔 영상으로 찍어두는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의 첫 폴댄스 영상이 기록되었다.

기초동작 3단계가 전부인 25초의 짧은 영상이었지만, 그 안에 나의 한 시간이 전부 담겨있었다.


선생님이 상체가 유연하다고, 손에 힘이 좋다는 칭찬을 건네주셨을 때 기분이 좋았다.

서툰 나의 몸짓을 보며 귀엽다고 말씀해주신 다른 수강생분들의 웃음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하는 운동에 몸이 운했다.


힘을 빼기도, 힘을 주기도 해야한다는 것.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매번 서툰 그

오늘 첫 폴댄스 수업에서 다시금 상기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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