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01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어땠어요?
네 할아버지가 일본으로 떠나면서 온 가족은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단다. 우리 형제들은 학교도 가지 않고 바로 돈을 벌어야 했지. 가족 모두가 매일 고기를 잡으러 나갔는데, 나는 그동안 집에 남아서 누나가 일찍 결혼해서 낳은 조카를 돌봤어야 했단다. 애기가 울면 업고 다니고, 잠깐 틈이 나면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해오기도 했어.
아버지는 학교를 너무 다니고 싶었단다.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지. 하지만 할머니는 “조카를 봐줄 사람이 없는데, 네가 학교를 가면 누가 조카를 보겠어?” 라며 내가 학교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셨지. 나는 속이 상해서 “조카가 내 아들도 아닌데 내가 왜 학교를 못갑니까?”라고 화를 냈었지…. 나는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혼자서 교장선생님을 찾아갔단다.
교장선생님을 찾아갔을 때가 몇 살이셨어요?
그 때가 9살이었어. 교장선생님을 만나서 공부가 너무 하고 싶다고 단 하루라도 좋으니 학생으로 받아달라고 했단다. 그 때 마침 우리 동네 유지가 학교에 와 있었는데, 교장 선생님이 “저 아이가 어떤 아이인가?” 물어봤어. 그 분이 “쟤네 아버지는 일본에 징용갔다 와서 돈도 한 푼 안 가져오고 다른 데로 가버리고, 엄마랑 몇 식구만 사는 집이라 형편이 어렵습니다. 조금 봐주시면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겁니다.”라고 하셨지. 교장선생님은 가만히 고민하시더니 내일부터 한 번 나와 보라고 하셨고, 그날 이후로 나는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단다.
그 이후로 학교를 계속 다니셨나요?
얼마 다니지 못하고 3학년이 채 되기 전에 그만두게 되었단다. 학교에 입학했지만 조카를 돌보느라 수업에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어. 결석하는 날이 많다보니 오랜만에 학교를 가도 수업 진도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겠더구나.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학교를 더 이상 다닐 형편이 안 된다는 거였어. 공책 한 권 사기도 어려웠고, 매일 점심마다 먹을 도시락을 싸오는 것도 쉽지 않았단다.
담임선생님은 참 좋으신 분이었는데, 내가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학급반장도 시켜주시고 어떻게든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도록 상황을 많이 봐주셨어.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는데, 더 이상 내가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었다고 하시더구나. 내가 수업비를 오랫동안 내지 못하니 교장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두게 하라고 지시하신 것 같았어. 선생님은 집에서라도 공부를 놓치지 않고 하면 언젠가는 때가 올 거라고 말씀해주시며 많이 우셨단다.
*구술자의 신변보호를 위해 신원을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상의 것으로 대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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