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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 Oct 11. 2021

4년 2주 30분 4일

 컴퓨터 하단 우측 날짜와 시간을 나타내는 칸을 흘겨봤다. 4년간 일했던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전달하려 전화기를 붙든 지 30분째이다. 이유는 정신건강의 문제였다. 단순한 문제도 아닌 아주 큰 문제. 내게만 큰 문제. 나는 성인 ADHD 확진에 양극성 정동장애, 조현병 초기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평생을 앓고 2년째 약을 꾸준히 복용했지만 차도는 없고 먹는 약의 개수가 남은 건강을 담보로 한 빚처럼 늘어갈 뿐이었다. 손을 오므리면 갉작거리는 소리가 날만큼 많은 약은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계신 엄마를 떠올리게 했고 당뇨와 고혈압은 없지만 나는 많이 아픈 상태였다.


 출근길 지하철에 타면 사람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이어폰 음량을 최대치로 올리고 음악이 끝나 다음 음악으로 넘어가는 잠깐 사이에 들리는 대화 소리가 못 견디도록 끔찍해 팔을 살점이 파이도록 쥐어뜯었다. 길거리에 사람이 지나가면 고개를 푹 숙여 걸음을 재촉하고 대화 소리라도 들리면 귀를 뜯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퇴근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많은 6시 퇴근 지하철에서 마주해야 되는 수많은 낯선 이들이 싫어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 밤늦은 시간까지 버티고 버티다 겨우 퇴근하곤 했다. 


 팔과 손등이 먹물 튄 화선지처럼 상처로 거뭇거뭇해지고 얼굴에까지 손톱을 세우기 시작했을 때 더 이상 견딜 수 없음을 실감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대로 죽어버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결심하기까지 2주가 걸린 말을 하기 위해 30분도 더 넘게 망설이고 있을 때, 정말 죽을 것 같아 방문했던 상담실에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상담실 방문이 처음은 아니지만 믿음은 없었다. 학창 시절에 몇 번 들렸던 곳은 노력이 부족해서 그럴 뿐이며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조언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고 20대 후반까지 상담실을 찾아볼 생각조차 안 했던 것도 기억 한 켠에 가시처럼 박힌 실망감 때문이겠다. 노력으로 퉁치는 조언을 받을 나이가 한참 지난 지금에선 어떤 답을 받을 수 있을지 기대와 불안감이 뒤섞인 채 상담실을 방문했었다.


 상담실은 아담하고 조용했다. 내부가 제일 좋아하는 분홍색으로 예쁘게 꾸며진 덕에 낯선 사람과 만나는 긴장이 1차적으로 가라앉았다. 게다가 안내를 해주시는 선생님도 상담 선생님도 다 조곤한 말투와 조용한 목소리였기에 조금 더 경계심을 다운시키고 낯선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상담 전 작성한 문진표를 전달받으신 상담 선생님과 1:1 상담실로 들어서 천천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는 절박한 만큼 드러내면 약점이 되는 부분까지 상세하게 작성한 문진표를 꼼꼼하게 살펴봐주셨다. 스스로 말을 하게끔 자연스럽게 유도해주셨고 티 내지 않고 지냈던 나날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버티기 어려웠을지 공감과 위로의 말을 건네주셨다.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지만 상담 선생님이 미리 다져놓은 길을 덜덜 떨리는 발로 걸어가듯 그렇게 말을 주고받았다. 


 상황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저히 버티기 힘들다면 퇴사 통보를 하는 것을 응원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안다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받은 답변은 조금이라도 용기를 내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해 주었다. 이후에 일이 어떻게 되든 어느 것 하나 잘 못 되는 게 아니며 상황에 맞추어 자신을 꾸려가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자며 가슴에 손을 얹고 이름을 부르며 문장을 따라 해 보자고 하셨다.


 스스로 가슴에 손 얹는 일조차 쑥스러운데 입술로 이름을 부르며 따라 할 자신은 정말, 도저히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결국 쑥스러워 따라 하지 못했지만 상담 선생님은 나를 대신해 내 이름을 부르며 많은 격려의 말을 해주셨다. 나 스스로에게 들려줬어야할 말을 조곤한 목소리로 대신해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던 상담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이름을 부르며 해주시던 말은 평생 잊을 수 없겠다. 



 " 윤경아, 난 너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어. 내가 지켜줄게. "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을 평생 만날까 말까 하는 와중에도, 이미 가까이에 있는데도 알아채지 못한 게 아닌가 싶었다. 흘러든 생각을 인정하기 싫어 미간을 찌푸렸지만 사무실에서 마른 눈물을 쏟으며 고민하고 있는 내겐 귀중한 원동력이 되었다. 입술로 고백하진 못 해도 가슴에 손을 얹고 속으로 따라 하며 전화기를 다시 붙들 수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퇴사 통보를 하니 대표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생각지도 못하게, 그것도 금요일 저녁에 통보했으니 내가 상사였어도 어이가 없었을 거다. 내 딴에는 문자 통보가 아닌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다.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스스로 해야 된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지난날처럼 문자 하나만 틱 보내고 잠수 탔을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대표님은 며칠만 더 생각해보자는 말과 출근이 힘들다면 당분간 재택근무로 해주겠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특성상 재택근무가 거의 불가능한 직업이다.) 이미 퇴사준비로 적금까지 깨놨기에 인수인계 기간인 3달 동안 저를 하나 더 복제해놓고 나가겠다는 말까지 했지만 완전한 퇴사는 보류당했다. 그렇게 재택근무 기간을 얻고 사람 없는 조용한 방에서 4년 2주 하고도 30분, 그리고 4일 더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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