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조울증 : 감정의 장애를 주요 증상으로 하는 내인성 정신병 조현병 초기: 사고의 장애, 망상 · 환각, 현실과의 괴리감, 기이한 행동 등의 증상을 보이는 정신질환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 진단서를 써줄 수 있을 만큼 확실한 나의 병명이다.
사실 긴 글과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지 얼마 안 됐다. 아니, 내게는 아주 오래된 일이다. 얼마나 됐냐면 벌써 2년째이다. 2년이나 꾸준히 독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성인 ADHD 진단으로 약물치료를 시작하며 이뤄낸 성과였다. 그전까지 글을 읽으면 양 쪽이 훤히 뚫린 지관통에 글자를 갈아 쏟아내는 기분이었다. 자음 모음 찌꺼기 하나 남지 않는 머릿속은 읽은 글을 기록하기를 거부하고 활자에 집중하기를 거부했다.
비단 글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랬다. 물 컵을 손으로 들어야 하는데 순간 다른 잡생각에 물컵을 든 손에 힘을 주어야 하는 집중력도 같이 뺏기곤 했다. 물컵을 쏟는 건 기본이고 걷는데 집중이 되질 않아 길을 걷다 갑자기 우뚝 서버린다거나 하는 일이 잦았다. 걷는 일마저 집중력이 그 모양인데 학업 성적은 어땠을지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학업도 대인관계도 끝을 찾을 수 없는 실타래 같았다. 어디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지 망치지 않고 유지할 수 있을지 평생을 걸려 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애초에 코를 잘 못 꿰고 시작했으니 다 뒤죽박죽 섞여있을 뿐이었다. 코를 다시 풀지도 못할 만큼 엉켜서 말이다.
차라리 콧물 취급하며 휴지에 덩어리로 싸서 버리고 새로 시작하면 좋았겠지만 지금까지 버텨온 시간이 아쉬워 과거에 짜 놓은 엉성한 코들을 붙들고 어떻게든 고쳐보려 바늘을 이리저리 쑤셔대고 있던 것이 몇 년 전까지의 내 모습이었다.
집중을 못 하고, 모든 일을 금방 지루해하고, 해야 할 일을 마감날까지 미루고, 할 일을 해야 됨을 알아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거부반응은 멘토스에 콜라를 부은 듯 팍팍 솟아올라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낼 수가 없었다.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은 안 그래도 밑바닥인 삶의 질을 최저로 끌어내렸다. 걸려온 전화를 받아 고객이 요구하는 내용을 듣고 처리해주는 것이 주 업무였는데 살아온 내내 핸드폰 음성통화 기록이 한 시간을 넘어본 적 없는 내게 전화통화 업무는 상상 이상으로 버겁고 힘든 일이었다.
실시간으로 말을 알아듣고 짧은 통화시간 내에 신속하게 업무 처리를 해야 하는데 요구사항을 알아듣는 것조차 안 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전화를 받으면 몇 번이고 내용을 되물어야 했고 고객에게 안내할 사항이 생겼을 때 자주 쓰는 단어조차 생각이 안 나 말을 버벅거리곤 했다. 대체 그 자리에 왜 앉아있냐는 말을 들은 적이 수두룩 하다.
간단한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상사이신 대표님은 그때마다 혼을 냈지만 감사하게도 그 건에 대해 구태여 말을 덧붙이지 않으셨다. 다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수도 없이 실수했던 모습을 떠올리고 반복 재생하며 자책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해도 어이없는 곳에서 또 실수가 터졌다. 10 중에 9가 잘 처리되더라도 1이 잘못되면 모든 게 실패로 여기니 좁아터진 머릿속엔 성공 타율이 0%에 가까웠다.
어쩌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모든 게 완벽한 하루가 있었다. 목소리부터 활기찼고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어떤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았고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어려운 일이지만 사회 구성원 중 하나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이 충만했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다. 그때에는.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실패'에 해당하는 일이 하나라도 생기면 솟아올랐던 모든 것들이 내핵까지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깨어있는 모든 시간이 자책과 후회로 점철됐다. 지각한 날엔 좀 더 일찍 잤더라면,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났더라면, 그 버스가 더 빨리 왔더라면 오늘 하루가 완벽했을 텐데. 완벽할 수 없으면서 완벽이라는 이상을 버리지 못하고 항상 지나온 과거에서 개선점을 찾다 보면 언제나처럼 최종 생각지는 똑같았다. 이렇게 살바에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어느 정도 직장일의 안정기에 들어서고 그 이후에도 속을 곪아 터뜨리며 깊은 우울증과 조울증에 시달렸다.
정신병을 드러내면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부모님 말씀을 받들어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기고 있던 것이 병을 더 곪게 만들었다. 이젠 낯선 사람이 너무나 무섭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 모르는 사람,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리면 이유 없이 공포에 질렸다. 집으로 뛰어들다시피 들어와 이불에 몸을 파묻어도 잔상처럼 목소리들이 귓가에 남아 흘렀다. 소곤소곤, 대화를 하는 잡음이 어느 순간부터 귀에 환청처럼 들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 나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확신에 차 더더욱 귀를 틀어막곤 했다. 혼자 있거나 조용한 공간에 편하게 있으면 들리지 않았지만 사람이 많은 곳이나 억지로 전화통화를 길게 하게 되면 무슨 의지로 그렇게 대화를 하는 거냐고 타박하듯 어김없이 귓가에 소곤소곤 거리는 환청이 일었다.
이전부터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제는 분명해졌다. 내가 거리를 지나갈 때 대화하고 있는 모든 이들은 나에 대해 욕을 하고 있었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내겐 그게 사실이었다. 이어폰을 단 하루도 뺀 적이 없다. 이어폰이 고장 나거나 잃어버린 날엔 밖에 나가기가 너무 무서워 펑펑 울다 출근하고 퇴근했다. 사람들 말소리가 들릴 때면 숨도 못 쉴 정도로 긴장해 스스로 팔을 쥐어뜯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평생을 공상에 빠져 지내던 내가 낯선 이들이 전부 나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고 상상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하철에 빼곡히 들어찬 낯선 이들이 전부 나를 죽이려고 이렇게나 많이 모이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여기자 조금만 큰 몸짓이 보이거나 큰 목소리만 들려도 당장 죽을듯한 공포를 느꼈다. 끔찍했다. 밖에서 겨우겨우 살아 돌아오면 집에는 벌레와 곰팡이들이 위협해 마음 편히 쉴 수도 없었다.
매일을 생존을 위해 벌벌 떨며 버텼다. 버티고 버티다, 아직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그렇게 퇴사를 결정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