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경 Oct 13. 2021

셋방

 당시 살던 집은 10평 3룸 20년 넘은 낡은 빌라의 3층이었다. 고등학생 때 친구인 룸메와 나의 귀여운 고양이와 함께 1년 반 동안 한 번도 안 싸우고 지내던 곳이다. 룸메의 직장과 내 직장의 딱 가운데 지점에서, 그나마 둘이 같이 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에, 보증금과 월세가 그 주변 시세보다 훨씬 쌌던 집이었다. 낡은 빌라는 사람이 살기 시작한 지 1년도 안돼서 벌레가 창궐하고 곳곳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룸메는 무난한 성격이어 거의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나는 너무나 끔찍했다. 너무너무 너무 끔찍했다! 본가에서도 방에 핀 곰팡이와 매일같이 들어오는 벌레가 싫어 자취방은 제일 깨끗한 곳으로 (알고 보니 깨끗해 보이는 곳이었다.) 왔는데 160도 안 되는 키만큼이나 큰 절망감을 맛보았다. 원체도 집안일하는 걸 좋아해 매일같이 열심히 청소했지만 손댈 수 없을 만큼 피어대는 곰팡이한테 속수무책이었다. 


 꽃도 1년에 한철만 피는데 매일같이 피어대는 것들을 마주하는 게 얼마나 끔찍했는지 아무도 모를 거다. 도대체 왜 곰팡이가 번식하는 걸 보고 꽃과 같이 '피었다'라는 동사를 같이 쓰는걸까.....????


 2층 침대를 두고 있는 안방은 '그나마' 깨끗했다. 점점 천장이 갈라지고 바로 앞인 베란다엔 누수로 그 녀석들이 또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지만 말이다. 최대한 청결을 유지하고 환기를 시키고 물 틈새를 막는 등 벌레가 들어오는 수단을 차단하려 애썼으나 한낱 인간이 20대 후반의 동갑내기 건물을 돌보기란 쉽지 않았다. 


 도대체 이 녀석들은 어디서 어떻게 들어오는 건지 비가 오거나 습한 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났고 멘탈이란 멘탈은 다 부셔놓았다. 어느 날은 설거지를 하는데 천장에서 지네가 떨어져 그릇 두 개를 깨 먹은 적도 있었다. 


 이쯤 되면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살아있는 생물체한테 면역이 없는 모양이다. (귀여운 고양이는 제외.) 그런 일이 있을 때면 잠들기 전까지 어디서 또 벌레가 나오지 않을까 벌벌 떨며 긴장 속에 잠을 이루지도 못하는 나날이었다. 


 가장 편안해야 될 '집'과 '방'이라는 공간이 불안으로 점철되자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기분 전환을 하고자 깨끗하게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나서 뒤돌면 검은 무언가가 돌아다니고 구석진 곳에 검은 무언가가 활짝 피어있으니 집안 곳곳 시선이 닿는 것마다 스트레스였다. 강력하다는 곰팡이 제거제를 다 써봤지만 그때에 잠깐 없어질 뿐 벽 깊이 스며든 포자들이 생기를 머금고 잡초처럼 자라났다. 


 평생을 곰팡이 핀 방에서 살다 겨우겨우 탈출한 곳이 같은 곳이라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틈 날 때마다 부동산 어플로 주위에 깨끗한 방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개발지역 근처가 그러하듯 겉만 멀쩡하게 바꾸고 사진 보정으로 혹하게 만드는 매물이 대다수였다. 자금 사정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의 깨끗하고 취향인 방 사진을 볼 때마다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려와 이미 젖을 대로 젖은 우울을 푹 적셨다. 처음 자취방을 구할 때 어플에 의존해서만 구하다 보니, 또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직접 찾아다닐 엄두도 못 내고 날마다 기도하듯 좋은 방이 나오길 기다리는 날이 계속되었다. 


 이제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편안하고 안전한 집이 아니라는 인식이 못 박힌 뒤였다. 둘이 살다 보니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도 눈치를 보게 되었고 긴장은 잠들기 직전까지 하루 종일 내내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 병은 더 악화되었고 집 상태가 안 좋아지니 악화에 가속이 붙었다. 출근할 땐 사람이 무서워 현관문 앞에서 벌벌 떨었고 퇴근할 땐 집에 벌레가 나오지 않을까, 또 곰팡이가 펴있진 않을까 벌벌 떨었다. 

 

 모든 순간이 긴장의 연속인 생활이 반년이 넘게 반복되다 보니 정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만 갔다. 집은 그나마 낯선 이들을 피할 수 있었지만 밖으로 나가면 등불 없이 어두운 동굴을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젠 차라리 벌레와 곰팡이와 오순도순 살며 다시는 밖에 나가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에 이를 즈음에 퇴사 통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깨끗한 안방에서 출근했어야 할 시간에 앉아 바로 옆에 누워있는 나의 고양이를 쓰다듬는 시간은, 정말이지 너무 행복했다. 이래서 다들 돈 많은 백수가 꿈이구나. 건물주의 일상 하나를 흉내 내듯 해가 잘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아 재택근무로 사람 상대를 하지 않으니 그제야 숨을 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낯선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행복하고 기뻤던지 근래에 그렇게 행복한 감정을 느낀 건 그때뿐이었다. 환기나 시킬까 하고 베란다가 있는 창문을 열었을 때 마주한 바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그날은 더 완벽했을 거다. 


 대표님은 퇴사 통보를 거절하셨다. 내 직업은 상사의 개인 비서 같은 일이고 상사의 업무 중 90%를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렇게 4년 동안 맡아온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건 둘째치고 그동안 데리고 있던 정을 아주 무시할 수 없으셨던 모양이다. 게다가 내 아픈 상태를 전혀 몰랐다는 데에  충격이 크셨다.


 그동안 업무 중 실수했던 것, 전화통화 하기까지 그렇게 뜸을 들였던 것, 자주 멍해 보이던 모습까지 아파서 그랬었다는 데에 많이 속상해하셨다. 그래서 더더욱 퇴사 후 방에 혼자 틀어박혀 있겠다는 의사를 거부하셨고 억지로라도 움직여야 더 좋다는 것이 대표님의 의견이었다. 


 마냥 일 뿐만 아니라 진심 어린 걱정이었기에 더 이상 밀어붙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힘들었다. 그게 그렇게 힘들까? 정말 힘들다. 완전 힘들다. 완전이 오나전으로 오타가 나도 눈치 못 챌 만큼 힘들다.


 내겐 죽기보다도 더 무서운 일이 낯선 사람이 가득한 출근길과 퇴근길이었다. 계속 재택근무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일을 계속한다면 결국 출근을 해야 했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안정적인 출근을 위해서는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야 사람과의 접촉도 줄이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일도 적을 테니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최후에서 한 발짝 위로 올라온 수단에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금요일, 주의 마지막 정리를 위해 조금 늦은 시간에 사무실로 출근했을 때 이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냥 말을 꺼낸 것뿐인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대표님 차를 타고 부동산으로 가고 있었다. 이사 얘기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더니 사무실 문 닫고 당장 부동산부터 가자고 반쯤 끌고 나가셨다. 얼결에 대표님과 함께 여러 부동산과 방을 보러 다니며 이사 생각할 땐 자각하지 못했던 마음 한편에 간직하고 있던 생각이 꿈틀댔다. 


 곰팡이가 없고 깨끗한 방, 마음 편히 홀로 쉴 수 있는 방, 눈치 안 보고 내 취향대로 꾸민 방, 내가 원하는 집, 내가 원하는 방.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아팠던 나는 이때만큼은 월세가 비싸더라도 깨끗하고 해가 들어오는 방에서 살아보자고, 지금까지 아파하며 모아 온 적금을 아낌없이 쓰기로 마음먹었다. 작더라도 깨끗하고 좋은 집에서 치료해보자고 도닥였다. 그리고 우습게도, 이 방법은 내게 아주 적절한 치료법이었다.

이전 02화 ADHD, 조울증, 조현병 초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