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을 통해 바라본 한국패션의 메시아니즘

Fashion Week가 Passion Week에 이르기 까지,

by 김석현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_The Descent from the Cross.jpg



기독교인들이 중히 성수하는 절기 중 하나에 해당되는 부활절, 그 부활절을 앞둔 한주는 흔히 고난주간이라고 일컫는다. 이는 메시아, 즉 구원자인 예수가 이스라엘에 입성하는 ‘종려주일’ 부터 예수의 재판과 죽음을 기리는 성 금요일까지를 의미한다. 유대 전역에서 각종 이적을 행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로마의 식민지인으로써의 유대인들에게 크나큰 사건이었다. 많은 군중이 그 입성길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하고 열광했다. 식민지배자 로마를 몰아내고 유대인의 세상, 배고픔과 질병에서의 해방을 고대했다.


하지만 일주일도 채 되지않아 예수는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메고 간다. 이스라엘 시민들은 왜 그들이 그렇게 연호하던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았는가

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원인은 ‘실망’이 그 원인이지 않을까.


한 집단의 실망은 그렇게 열광하던 한 인물을 비참한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잔인하고 비정하다.


이 종교역사의 중대사를 어찌 우리 한국패션계와 어떻게 감히 연결 지어 보겠냐마는,한국의 패션계를 바라보는 우리 역시 이스라엘 시민들과 같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질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는가에 빗대어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칼 라거펠트가, 라프 시몬스가, 요지 야마모토가 우리 곁에 나타나길 소망한다. 그러노라면 얼마든 지갑을 열어 환영해줄 기세로 말이다. 조금이라도 재능이 있거나 굵직한 대회의 수상자에겐 제2의 아무개가 나타났다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한다.


그렇게 메스컴에서, 우리의 입에서 오르내리던 이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돌이켜 보건데 우리 스스로 그들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나.


큰 대회의 입상자에겐 주홍글씨를 씌우며, 주목받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들의 주위엔 늘 반듯한 못과 망치를 높게 든 이들이 즐비하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기 마련이지만, 기대를 하는 이도 제 3자, 실망을 하는 이도 제 3자이다. 주체는 늘 그렇듯 기대는커녕 실망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것을 느끼는 이는 오직 그 수동적인 객체, 당신이다.


한국의 패션위크는 1987년에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32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 마저도 2004년부터 매스컴에선 효율성이 없는 전시라며 존폐를 논할 정도로 DDP의 시대가 열리기 전까진 그 누구도 관심하나 주지 않던 일종의 일부 디자이너들,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했다.

(각주 http://www.okfashion.co.kr/detail.php?number=2538)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패션계에 메시아가 나타나 온갖 비판에 신음하는 한국패션계를 구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32년의 패션위크의 역사를 가진 우리가 19세기 서구권에서 시작한 그 문화를 손쉽게 따라가리라고는 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의식성장의 더딤은 우리 스스로 못과 망치를 들게 하는 꼴이 된다.


서울패션위크에서는 본 쇼 이외에 다음세대 루키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제너레이션 넥스트’라는 쇼 역시 전개한다. 다양한 매체들, 혹 당신과 나는 앞다투어 이 세대를 구원할 메시아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한없이 주관적인 시선을 ‘객관성’으로 포장하고, 평가하고 누구보다 열혈히 십자가에 못박았다.


많은 협회들과 단체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다음세대의 비전을 제시할 장을 열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메시아를 찾는 장으로 변질되곤 한다. 뒤틀린 관심은 오히려 본질을 흐리고 병들게 한다. 목적의 본질을 잃고 메시아니즘이 팽배한 패션계를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선이 필자가 지적하는 그것이다.


그렇게 우리 깊숙이 내재된 ‘메시아니즘’은 ‘Fashion Week’를 ‘Passion Week’로 인식한다. 누군가에겐 패션위크, 누군가에게는 고난주간이 된다.


지적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전자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와 후자로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는 인식의 결이 다르며 생각의 차이가 금세 드러난다.


비판과 한탄은 종이 한장 차이지만 객체를 인식하는 생각의 수준이 크게 다르다.


2천년전, 메시아로 일컬어지던 예수도 하나의 지침을 가지고 시민들을 가르쳤고, 이를 받아들인 이들은 기독교관 안에서 ‘구원’을 얻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십자가에 못박으라 소리쳤다.


앞으로 다가올 패션위크에 앞서, 패션계 이슈에 앞서 우리가 양손에 쥔 것이 비싼 카메라와 좋은 노트가 아니라 잘 드는 못과 단단한 망치가 아닐지 점검해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