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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코는 왜 Sep 17. 2019

김보라 감독의 보랏빛 세상

세상을 향한 가장 작은 날갯짓, '김보라'

조류 중 가장 작은 새, 벌새. 작은 몸을 가지고 있음에도 벌새는 공중에 멈출 수 있을 만큼 강한 날갯짓을 한다. 그런 벌새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것만 같은 은희, 영화 <벌새>는 거대한 세상에 존재하는 은희가 살아남기 위한 작은 날갯짓에 대한 이야기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


윤가은 감독의 글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택했듯이 김보라 감독의 이야기에서도 김보라 감독의 비슷한 영화 두 편을 가지고 같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를 통해 김보라 감독의 세계가 어떻게 확장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더 발전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벌새>와 함께 김보라 감독의 단편 영화 <리코더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김보라 감독이 <리코더 시험>에서 자기 세계의 가능성을 시험한 후 만든 영화가 바로 <벌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리코더 시험>은 <벌새>의 전신이라고 할 만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리코더 시험>과 <벌새>의 주인공이 모두 '은희'인 점, 부모님이 모두 방앗간을 운영하는 점, 삼 남매인 점,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던 점, 오빠는 은희를 수시로 폭행하는 점 등등 설정만 봤을 땐 같은 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영화는 닮아 있다.


김보라 감독의 <리코더 시험>


<리코더 시험>은 1988년에 살고 있는 은희에 대한 이야기고, <벌새>는 1994년에 존재하는 은희의 이야기다. 둘은 각각 초등학교 3학년, 중학교 1학년이다. 이런 시간 차와 영화 곳곳의 비슷한 요소들은 마치 <리코더 시험>의 은희가 자라서 <벌새>의 은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시간이 흐른 만큼 두 은희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몇 가지 보인다. 바로 주변 인물과의 갈등 관계와 세계에 대응하는 방식과 그 세계가 영화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김보라 감독의 세계를 하나씩 조심스레 들여다보자.


김보라 감독의 <리코더 시험>


먼저 주변 인물과의 갈등 관계에 대한 것이다.  <리코더 시험>에서 은희가 겪는 갈등은 그렇게 돋보이지 않은 것들이었다. 리코더를 안 가져와 선생님에게 혼난 것, 오빠에게 일방적인 구타를 당한 것, 그럼에도 부모님이 크게 관심을 주지 않은 것 등이 개인의 경험으로 머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인생의 모든 것을 바꿀 만큼의 큰 사건들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거기에 대한 초등학교 3학년 은희의 대처도 고작해야 밤에 시끄럽게 리코더를 불어 부모님을 깨우는 정도고 엄마에게 자신의 어디가 예쁜지 확인받는 정도다. 물론 어린 시절의 정서 발달과 후에 남을 트라우마에 영향을 줄 수 있겠으나 <벌새>와 비교했을 때 <리코더 시험>에서 보여준 갈등은 초등학교 3학년의 시선에서 본 것들이었다.


그에 반해 <벌새>는 자란 은희만큼이나 다양한 갈등 관계가 보인다. 첫 키스를 나눈 남자 친구와의 갈등, 자신을 좋아했지만 한 학기만에 마음이 돌아서버린 후배, 자신을 배신한 절친, <리코더 시험>과 마찬가지로 무관심한 부모님과 구타를 일삼는 오빠, 어쩌면 자신의 첫사랑 영지 선생님, 노래방에 가지 말고 서울대를 가자는 담임 선생님 등등 다양한 인물과의 사건이 일어난다. 그중에는 성수대교 붕괴로 인한 영지 선생님의 죽음, 몸속에 난 혹을 제거하는 은희 등등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들이 대거 등장한다. 물론 이는 길어진 상영시간 덕분인 것도 있으나 그만큼 김보라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


두 영화 모두 은희와 은희를 둘러싼 세상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위에서 밝혔듯이 그 갈등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그렇기에 그것에 대응하는 은희의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리코더 시험>의 경우 리코더를 밤에 불며 잠을 깨우는 것 이외에 별다른 게 등장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리코더 시험>의 은희가 순리대로 돌아가는 나약한 은희의 모습이라면 <벌새>에서 은희는 작은 날갯짓을 시작한다. 매번 미안하다며 찾아오는 남자 친구에게 '난 널 좋아한 적 없다'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자신을 구타하는 오빠에게 적극적으로 반항하는 장면, 클럽을 가고 담배를 피우며 일탈하는 모습 등은 은희의 내부에서부터 일어난 작은 날갯짓을 잘 보여준다. 세상을 겪고 세상의 여러 요소들과 마주하며 그것들에 반항하고 벗어나려는, 혹은 변화시키려는 은희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리코더 시험>에 없었던 영지 선생님의 존재가 크게 작용했다.


누군가는 <벌새>를 '보편적인', '평범한'이라는 단어들을 사용해 '객관적인 경험', '1994년 우리의 자화상' 같은 범주에 넣으려 하지만 은희의 경험은 굉장히 개인적이다.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과 트라우마 등을 담아냈으며, 본인의 경험이 아니라면 <리코더 시험>과 <벌새>의 유사성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개인적인 작품에 공감하고 감동받고 감정 이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해답을 1988년과 1994년이 영화들에서 작동하는 방식에서 찾고 싶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


두 영화에서 보이는 김보라 감독의 특징이라고 하면 단연 시대상을 빼놓을 수 없다. 거대한 시대의 시류 속에서 주인공들이 존재함을 강조하기 위해 감독은 끊임없이 시대를 암시하는 사건들을 전면에 드러낸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살지 않았더라도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예를 들어 <리코더 시험>에서는 88 올림픽, <벌새>에서는 성수대교 붕괴, 김일성 사망 등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리코더 시험>에서는 88 올림픽이 말 그대로 시대상을 나타내는 것에 그친 반면, <벌새>에서 성수대교 붕괴는 가족을 다시금 뭉치게 하고 은희가 선망하던 대상인 '영지'를 죽임으로써 기능을 한층 더 고차원적으로 수행한다. 이를 통해서 은희는 더 성장하고 자신이 빛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한층 더 깊게 하게 된다. 은희의 이런 고민은 고차원적으로 작용한 시대상과 맞물리며 우리에게 깊은 주제의식을 던져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객관적인 경험으로 치환시킨 감독의 마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린 영화를 통해 또 다른 은희가 된다. 결국 은희가 빛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꿋꿋이 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우리를 통해 그것이 증명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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