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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Jun 09. 2020

낮은 업무 강도, 낮은 임금

월급이 반토막이 되는 마법.

 처음 보건소에 들어와 가장 놀란 일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도 시간이 남는다는 것이었다.


 열두 시 땡 하면 모두들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 보건소 바로 옆에 있는 구내식당으로 간다. 후루룩 삼키지도 않고 분명 꼭꼭 잘 씹어먹었는데도 20분 정도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밥을 다 먹고 일어난다. 이후 오후 업무가 시작하는 1시까지는 자유시간이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수다를 떨거나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시간을 보낸다. 신기했다. 병원 밖에서는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점심을 먹고 '남는 시간'에 따뜻한 햇볕 아래를 걷고 있자니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밥을 챙겨 먹기는 어렵다. 밥을 먹으러 식당까지 내려가는 시간, 밥을 먹는 시간, 밥을 먹고 병동까지 되돌아가는 그 모든 시간 동안 일은 점점 쌓이고 밀린다. 자연히 대충 씹고 꾸역꾸역 넘기며 밥을 '마실' 수밖에 없다. 간호사에게 역류성 식도염이 직업병처럼 따라다니는 이유다. 그나마도 밥을 먹은 날은 굉장히 운이 좋은 날이다. 밥은커녕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12 시간 넘게 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날엔 먹은 게 없으니 화장실에 갈 일도 없다. 목과 혀가 바짝 말라 환자에게 설명할 때마다 타들어가듯 아프다. 카트 한 구석에는 환자가 마시라며 준 음료수 병 하나가 그대로 있다.


 반면 보건소에서는 '이래도 되나'싶을 정도로 자유로웠다. 물이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정수기에서 물을 따서 마시고, 커피든 주스든 홍차든 내가 뭘 마시던 신경 쓰지 않는다. 심지어 사무실에는 과자나 초콜릿 같은 간식들이 있어 종종 꺼내먹는다. 점심시간은 12시부터 1시까지. 화장실은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가고, 6시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근 준비를 한다.


 물론 물을 마시고 싶을 때 마신다던가, 밥을 제 때 먹는다던가,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간다던가 하는 종류의 것이 일반적으로 커다란 자유나 큰 장점으로 다가오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병원에서는 이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자유를 얻기는 매우 힘들다. 나는 처음으로 인간다운 업무 환경을 느끼면서 정말 행복했다. 동시에 병원이 얼마나 가혹한 곳인지 새삼 깨달았다. 어쨌든 이상의 이유들로 나는 보건소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지방 간호직 공무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첫 월급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전에 이야기는 들었다. 입사 후 첫 3개월 동안은 '실무 수습'이며, 이후 3개월 동안은 '시보'를 달았다가 6개월이 되는 때부터 '진짜 공무원'이 된다고 했다. 특히 첫 3개월 동안의 '실무 수습'은 공식적으로 공무원이 아니기에 연금도 공무원 연금이 아닌 국민 연금을 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무 수습' 기간 동안은 본봉의 80퍼센트만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본봉의 80퍼센트.

 그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질 않아 어느 정도였나 물어봤었다. 나는 90만 원 정도였던 것 같아, 하고 누가 말했다.


 90만원이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믿어지지가 않아서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8급 1호봉에 80퍼센트를 계산해보니 120만원이 나왔다. 에이, 그럼 그렇지. 그래도 100만원은 넘겠지.

 월급날 통장에 적힌 숫자를 천천히 세어봤다. 본봉에서 세금을 제하고 1,467,490원. 이런저런 수당을 더하니 180만원 정도였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러나 월급은 다음 달 폭삭 주저앉았다. 본봉 1,236,960원. 세금 115,320원.

 계 1,121,640원.

 이게 월급이라고? 통장에 찍힌 숫자가 터무니없어 웃음도 나오질 않았다. 어쩐지 지난달 월급이 많다 했더니, 지난달 월급은 지지난달 월중에 입사해 일한 열흘 가량의 일급이 포함된 금액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매월 1일 들어오는 정액급식비 13만원과 직급보조비 12만5천원, 시간외 근무수당과 가족수당을 합하니 총 149만원이 되었다. 반토막이었다.




 간호사는 비교적 연봉이 높은 직군에 속한다. 나는 첫 월급으로 세후 300만원 정도를 받았다. 물론 여기에는 야간수당 등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밤 근무를 하지 않는 수술실의 경우에는 이것보다 조금 적다. 유명 대기업 이름이 붙은 대학병원에 간 친구들은 들쑥날쑥하긴 해도 200만원에서 500만원까지 받는다고 했고, 지방 요양병원에서 나이트킵 근무를 하는 친구는 한 달에 13일 정도 일하고 200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149만원이라니. 커다란 파이가 반으로 뚝 잘렸는데 그걸로도 모자라 쥐새끼가 한 입 파먹은 것 같은 149만원. 공무원 월급이 쥐꼬리만 하단 얘기는 누누이 들었지만 이렇게 적을 줄은 몰랐다. 실무수습이라서 이렇게 적은 건가? 시보가 되면 좀 더 오르겠지? 나는 작고 소중한 월급과 희망을 품고 3개월 뒤를 기다렸다.


 그리고 실무수습을 떼고 받는 첫 월급. 정말 환장해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153만원이였다. 대체 왜? 계산상으로는 170만원은 나와야 했다. 허겁지겁 급여지급내역을 들여다봤다.


 '기여금'이 대체 뭐야?

 얼마 되지 않는 월급에서 '기여금'이란 항목으로 20만원이 공제됐다. 세전 189만원, 거기서 이런저런 공제와 세금, '기여금'을 빼니 153만원이 나온 것이다. 검색해보니 시보부터는 공무원이라 국민연금 대신 공무원 연금을 내는데, 이때 공제하는 금액을 '기여금'이라 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전 월급의 10퍼센트를 낸다고? 국민연금 낼 때는 6만원정도밖에 안 냈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안 그래도 공무원 연금은 수많은 칼질 아래 처참한 몰골이 되어 신규 공무원들은 더 이상 연금을 기대하지 않는다. 받을 수 있을지, 받아봐야 용돈 수준은 아닐는지 싶은 공무원 연금을 위해 월 20만원씩 강제로 내야 한다니. 차라리 그 돈 안 내고 내가 알아서 노후 준비할게요! 싶은 불만이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어. 5년 차쯤 되면 이런저런 수당이 붙으니까 그때부턴 좀 숨통이 트이더라. 쥐꼬리만 한 월급을 보며 좌절하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안쓰럽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수당? 그게 얼마나 붙길래? 당장 검색해봤다. 뭐가 이렇게 많아?


 다음 편은 실제로 보건소에서 일하는 간호직 공무원의 월급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 실무수습의 유무, 기간, 급여 등은 지자체마다 다르며, 매 년 개정될 수 있다. 우리 지역의 경우 17년도까지 실무수습 3개월 (본봉 80퍼센트), 시보 3개월 (본봉 100퍼센트) 후 정식 공무원 임용이었으나 다음 해부터는 실무수습 기간 동안에도 본봉의 100퍼센트를 받게 되었고, 그 다음 해에는 실무수습 없이 시보만 6개월을 하게 되었다. 시보 기간은 공무원 근속연수에 포함되므로 매 년 고용환경이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실무수습 기간이 아예 없거나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신규 공직자 과정에서 받은 석차를 기준으로 실무수습 딱지를 떼는 곳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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