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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Dec 21. 2020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들어왔어

화이트칼라 사무직인줄 알았는데 이건 그냥 블루칼라 현장직

2020년도 이제 딱 열흘 남았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남는건 역시 코로나19.

몇 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별별 지원 근무를 다 해봤지만 역시 올해만큼 시도때도없이 바깥으로 나돌아다닌 적이 없다. 




한여름에 천막을 치고 레벨D방호구를 겹겹이 껴입고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채 하루종일 쪄죽겠다 신음하며 며칠동안 근무하기도 하고,

진료 업무를 보던 중에 갑작스런 검체 채취 명령에 부랴부랴 준비해서 다녀오기도 하는 동안

보건소 앞에는 음압텐트가 생겼다가 사라지고 에어컨과 음압기능이 달린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생겼다. 

지난주에는 그 컨테이너 박스로 된 선별진료소에서 근무를 섰는데 에어컨이 고장나 실내 온도가 영하 2도라 덜덜 떨면서 빨리 따뜻해지기를 기다리기도하고, 여기저기서 히터를 빌려와 꽂았다가 전기가 전부 나가버려서 당황하기도 했다.


오늘도 나는 갑작스러운 확진자 발생 소식에 부리나케 달려나가 몇백명을 검사하러 다녀왔다. 내복도 입고 양말도 두겹을 신고 핫팩도 두 개나 붙였지만 겨울 날씨는 왜 이리도 추운지. 천막을 쳤는데도 다리는 달달달 떨리고 손가락은 곱는다. 물론 내일은 정상출근, 내일 모래는 또 지역 기관 전수조사, 또 그 다다음 날에는 다른 기관 전수조사를 나간다. 


그래도 나는 사실 상황이 나은편이다. 

나는 한 달에 한 두번 선별진료소 근무를 서고,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검체를 채취하러 나가고,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주말에도 자다가 전화를 받고 머리도 감지 못한채 부리나케 달려나가긴 하지만,

일 년동안 연가를 딱 하루 쓴 감염병계 계장님이나(이 분은 심각한 과로로 쓰러져서 한동안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야근을 할수록 얼굴이 창백해지는 모 직원, 강제로 주6일 근무를 하며 한달에 초과근무를 100시간 넘게 찍는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로 아주 상황이 좋은 편이다. 내가 여기서 힘들다고 했다간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라 섣불리 힘들다는 말을 꺼낼 수도 없다. 대체 다들 어떻게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이상하다. 나는 분명 여기선 앉아서 컴퓨터만 두드린다고 듣고 들어왔는데. 정말 뭔가 심각하게 잘못됐다. 

이전에도 취업 사기를 당했다며 글을 쓴 적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한 달에 한두번쯤 있는 지원근무는 별 일도 아니였다. 축제? 지원 나갈 수 있지. 의료 지원? 구제역 근무? AI 근무? 을지훈련? 오, 제발 시켜만 주세요. 마스크도 안쓰고 고글에 페이스 실드도 방호복에 장갑 두겹을 끼지 않아도 되던 과거여. 


제발 사람들이 타지역을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근 우리 지역에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는 죄다 외부 확진자 가족이나 지인과 접촉해 생긴 확진자다. 나는 올해 집에 한 번도 못내려갔는데…. 매 년 크리스마스는 가족끼리 모여서 케이크를 먹었는데, 올해는 고민에 고민을하다 결국 혼자 보내기로 했다. 정말이지 쓸쓸하고 실망스러운 연말이 아닐 수 없다. 


아니지, 오히려 쓸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에도 방역복을 입고 덜덜 떨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다. 혼자서, 조용하게, TV를 보면서 케이크를 먹으며 보내고 싶다. 제발 조용하고 무사히 연말을 보낼 수 있게 해주세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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