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빨리 감아버리고 싶다
영화 '클릭'에 보면 현실을 영화나 드라마처럼 느리게 볼 수도, 빠르게 넘길수도 있는 만능 리모컨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그 리모컨을 이용해 답답하고 지겨운 현실을 빠르게, 조금만 더 앞으로, 앞으로, 10초씩 스킵해가며 동영상을 보는 사람처럼 인생을 스킵해버린다.
내게도, 그런 리모컨이 있다면.
그러면 빨리 시간을 돌려서 3개월뒤로 훌쩍 날아가버리고 싶은데.
그러면 지금 이렇게 괴로운 마음도 훌쩍 사라질것만 같은데.
시간이 왜 이렇게 천천히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이번주엔 너와 내내 같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너는 지금 내 옆에 없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할 일이 없다.
평소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앉아있다가, 누워있다가, 이틀을 쫄딱 굶고나서 이별을 인정하고 뒤늦게 냉동 피자를 돌려먹으면서,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터지고, 얼굴을 가리고 울고, 다시 멍해졌다가, 정신차리고 일해야지, 돈 벌어야지, 생각하지만 손은 생각대로 움직이질 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거라며 호기롭게 오픈카톡방을 기웃거려보기도하고, 친구들에게 이별 사실을 알리며 울다가 남자 소개시켜달라고 되도 않는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그런데 아무리 해도 네가 자꾸 떠오른다.
네가 준 물건들을 버리려고 했다가도 머뭇거린다. 나는 아직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유일하게 버린건 네가 쓰던 칫솔 하나. 오랫동안 보지 못한 만큼 오랫동안 쓰이지 않은 것 하나.
오픈카톡방을 검색하며 게임, 보드게임, 영화, 연극, 노래, 애니메이션, 독서, 글쓰기, 그런것들을 검색할때마다 너와 내가 가지고 있던 공통점들이 떠오르고 너만큼 잘 맞는 사람이 있을까 또 울어버리고만다.
맞는 부분 만큼 맞지 않는 부분도 많았는데. 어느새 나는 그런건 전부 무시할만큼 너를 좋아해버렸다.
이별의 후유증은 평균 11주라고 했다. 3개월. 그리 길게 느껴지지않는 동시에 까마득하게 멀게 느껴진다.
당장 이번주가 너무 길다. 이번 주말은 너와 함께하려고 비워뒀는데. 나는 뭘 하면 좋을까.
너는 뭘 하고 있을까.
하루가 너무 길다.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갈까.
어떻게 해야 빨리 너를 잊
잊어야 하는데
잊지 못할것같다
나는 이게 첫사랑인데
서른이 되어서 겪는 첫 이별로 나는 내 첫사랑을 자각한다. 그게 사랑이었나보다. 내가 널 사랑했나보다. 내가 널 사랑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물어본적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감정이 사랑일까?
나는 사랑이 아닌것같다고 했고, 너 역시 사랑은 아닌것같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그것도 사랑이었다. 사랑이라는게 불타오르듯이 열렬한것만이 아니였나보다. 나는 너를 미지근하게, 내가 익는 줄도 모르게, 숨이 막히는 줄도 모르게 너를 사랑했다.
어떡하면 좋을까.
감정이 북받치는걸 참지 못하고 나는 이 기분을 그대로 글로 써버린다. 생각이 많아 잠이 오지 않을 때 글로 감정을 쏟아버리면 잘 잘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감정이 멈추지 않는다. 손가락이 멈추지 않는다. 흔해빠진 연애의 종말 중 하나일뿐인데. 정말로 흔해 빠진 일인데. 왜 이리 괴로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