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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해향취 Feb 16. 2023

부부싸움

평범해서 기적 같은 나날들 Ep.8

부부싸움을 했다.

루아가 생기고 나서 처음으로 다투었으니 대략 11개월 만이다. 그와 나는 MBTI 철자도 완전히 다른 정반대의 성향이다. 그래서 누구 하나라도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말다툼을 시작하면 답도 없다. 서로를 단단하게 연결해 줄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찾을 때까지 말이다. 주로 ‘그러니까 결국 우리 둘 다 잘 살아보자는 마음 하나는 같잖아.’ 퍼즐이 길고도 피곤한 다툼을 중재해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분명 잘 살아보자는 마음은 같은데 부모가 되고 나니 무서울 게 없어진 건지, 그간 해묵은 것들이 많았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연애 기간 합쳐 10년이라는 세월에 우리도 결국 권태로움을 맞이한 건지. 퍼즐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해와 변명, 조소와 한숨, 실망과 원망 그 어려운 감정들 속에서 점점 꼬여갔다.


그때 마침 그와 나의 아기가 깼다. 언성은 높이지 않았기에 금세 또 배가 고파 일어났을 것이다. 우리는 3주간 맞춘 합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재빨리 아기를 어르고 달랬다. 목욕을 하고 잔 뒤라 얼마 없는 머리칼이 마치 잔디 인형처럼 위로 삐쭉삐쭉 솟아오른 것이 퍽 사랑스러워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대화 끝에 나는 살짝 울었는데 그가 나중에 지나서 말하길 엄마가 운 걸 눈치챘는지, 여느 때보다 조금 적고 작게 응-애 거렸다고 한다. 여하튼 루아의 칼 같은 배꼽시계 덕분에 잠시 휴전 상태로 들어갔고 휴전이 곧 다툼의 끝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생활 패턴은 물론이거니와 대화 주제, 옷차림, 인테리어, 플레이리스트. 하나부터 열까지 아기에 맞춰 변화해 가는 중이다. 그 틈에서도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시시콜콜하게 나누던 일상의 대화들이다. 육아에 치여 대화 대신 무언가를 멍하니 시청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정말이지 딱 싫다. 그래서 다툼과 휴전 끝에 정한 첫 번째 가족 룰은 <식사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포함한 그 어떤 것도 시청하지 않고 대화 나누기>이다. 우리는 다퉜던 그 소파에 다시 앉아 룰을 정하고 남편이 대화의 물꼬를 텄다. 만약 사업을 한다면 어떤 걸 제일 하고 싶어? 음, 나는 서점 아니면 꽃집! 아 그리고 예쁜 소품 파는 상점, 가능하다면 밤에는 술도 팔고.. 에어비앤비도 하고 싶다. 그냥 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 A동 B동 나눠서 하면 되잖아! 예진이는 하고 싶은 게 참 많구나… 아! 근데 아마 나는 빵집 차리면 망할 거야. 계량을 잘 못하잖아. 베이킹은 사이언스래.


함부로 단언하자면, 우리는 앞으로도 연중행사처럼 크고 작은 이유에서 종종 다툴 것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감정 문제에 <식사시간에는 대화나누기>와 같은 룰을 적용할 수 없을뿐더러, 설사 룰을 정한다 하더라도 누구 하나 마음이 꼬여버리면 룰 따위는 개나 줘! 가 돼버리기 십상일 테니까. 대신 그와 나는 안다. 피할 수 없는 다툼을 무장해제 시켜줄 '루아'라는 강력한 퍼즐이 생겼다는 사실을. 그것도 이루 말할 수 없이 귀여운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그 퍼즐을 무기 삼아 칼로 물 베듯, 우리의 다툼이 오늘처럼 싱겁게 끝나기를 바란다.


2023.02.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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