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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해향취 Jan 07. 2023

딸 바보의 서막

평범해서 기적같은 나날들 Ep.7

우리 포도 이름을 천사라고 지어줄까?
마음에 분홍색 솜사탕을 가득 채운 기분이야
이런, 내가 딸 바보가 될 줄이야...

포도가 세상에 태어나다

사랑하는 내 딸이 태어난 22년 12월 29일 새벽 세시 사분. 네가 첫울음을 터트릴 때 나도 울고 아빠도 울었지. 너무나 작고 따뜻한 너를 마주하고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어서 ‘포도야. 엄마야. 포도야. 엄마야.’ 너에게 처음 들려준 말이 곧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뱉은 말이기도 해. 그날 우리는 모두 새롭게 태어났지.

아빠 말을 빌어 너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 널 사랑하지 않은 적이 단 하루도 없어. 눈물 많고 아직은 서툴기만 한 엄마 아빠이지만 네가 우리에게 와서 처음 알려준 사랑과 감사를 잊지 않고 평생 사랑할게, 우리 딸.


2022.12.29




배냇짓으로 활짝 웃어준 날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서, 슬퍼서, 서운해서, 화가 나서,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사랑하는 이가 어느 날 훌쩍 떠날까 두려워서, 떠돌이 강아지의 사연이 안타까워서. 세상의 갖가지 이유로 나는 자주 운다. 굳이 울지 않아도 될 일 앞에서도 말이다. 아기를 낳고 역시 나는 운다. 분명 호르몬 탓도 있겠지만 아기가 새근새근 자는 것만 봐도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너무 작아서 울고 너무 예뻐서 울고 너무 소중해서 울고 그러다 내가 너무 모자라서 운다. 이토록 커다란 행복과 불안을 동시에 안겨 주다니. 가혹하다. 어디선가 들었다. 인간이 아기를 낳는 이유는 나 자신 밖에 모르는 속성을 이타적으로 바꾸기 위함이라고. 서른 하고도 하나면 다 큰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에 나는 엄마와 아이가 동시에 되었다. 앞으로 아기를 키우면서 한없이 모자란 내 모습에 무너지는 순간이 많을 것이다. 나는 내가 아닌 포도를 위해서 아기보다 조금 더 빨리 커야 하고 씩씩해야 한다.


2023.1.1




첫 소아과 외출

소아과에서 운 기억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어림잡아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소아과를 다녔다고 치면 9살 10살 즈음에 울었겠지. 아파서라기보다 안타까움에 호두가 된 엄마의 턱을 보면서 그랬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내가 소아과에서 울리라고 상상도 못 했는데 오늘 소아과를 찾아온 아이들 틈바구니에 끼어 엉엉 울었다.

상황을 요약하자면, 신생아 검진 결과를 들으러 소아과에 방문하는 날이었는데 시간을 칼같이 맞춰온 남편에 대한 서운함으로 시작해 포도의 갑작스러운 울음과 소아과의 정신없는 환경, 이 쓰리 콤보가 나를 대책 없이 울렸다. BCG 주사는 생후 4주 이전에 맞혀야 하고 접종하는 날이 정해져 있으니 언제 언제로 예약해라 황달 수치는 정상 범주지만 더 오르면 어떻게 접수를 해야 한다 혓바닥은 살짝 짧은 편이어도 정상이다 등 속사포처럼 내뱉는 진단 결과는 내 귀에 경을 읽는 수준이었다. 어떤 정보도 정확하게 듣지 못하고 우는 포도를 급히 조리원 신생아실로 데려갔다. (산부인과, 소아과가 붙어있는 조리원에 예약한 것은 신의 한수였다) 붉게 충혈된 눈을 보더니 조리원 선생님들이 걱정스럽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았고 남아있던 설움이 폭발해 아기가 울어서 나도 운다고 사실 그대로 바보처럼 대답했다. 그러자 신생아는 우는 걸로 엄마랑 대화하는데 무서워서 아기가 울기나 하겠냐며 막 웃으셨다. 포도는 기저귀를 갈자마자 언제 울었냐는 듯 눈을 말똥말똥 떴다.

찬 기운이 살짝 드나드는 창가에 서서 달궈졌던 마음을 식힌다. 아기가 열병을 앓을 때마다 한 뼘 씩 크는 것처럼 나도 우는 만큼 성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내가 일등 엄마일 텐데.


2023.1.2




너의 이름

오늘은 포도 이름을 지어주었다. 불꽃 ‘루’에 싹, 조짐이 보일 ‘아’를 더해 김루아. ‘세상을 밝히는 빛나는 사람이 되어라’라는 의미로 겨울의 태양 같은 불(火)로 태어났다는 우리 아가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뜻을 모았다. 집과 밥, 옷을 ‘짓다’처럼 이름 뒤에도 ‘짓다’가 붙는다. 좋은 재료를 골라 다듬고, 어디 하나 모난 데 없이 순하고 견고하게 짓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애정을 더하고 더해도 넘치지 않는 것이 짓는 마음이다.

여느 때보다 오래 고민하고 애정을 담뿍 담아 지어 준 이름인 만큼 루아가 자기만의 세상을 꼿꼿하고 환하게 밝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포도야 아니 루아야, 너를 품에 안고 새롭게 지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활짝 웃더구나. 아직은 네가 너무 어려서 배냇짓에 지나지 않은 웃음일 테지만, 너의 미소에 엄마 아빠 세상은 환하게 빛났어. 앞으로도 엄마 아빠는 너를 힘껏 안고 함께 지은 너의 이름을 닳도록 불러줄 거야. 그때도 오늘과 같이 꽃처럼 웃어주렴. 그럼 온 세상이 빛날 거야.


2023.1.4




번외

선생님 안녕하세요. 309호 예진 산모입니다. 첫날은 똥 기저귀 가는 법을 몰라서, 둘째 날은 젖병을 물리는 방법을 몰라서, 어느 날은 아기가 젖을 물지 않아서, 또 어느 날은 아기와 함께 울면서 찾아갔습니다. 초산 엄마라면 누구나 그러했겠죠. 그래서 선생님들께 제가 그리 인상 깊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선생님들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양가 모두 지방에 계신 탓에 의지할 사람이라곤 남편 밖에 없는데 면회마저도 녹록지 않아 제가 의지할 곳은 선생님들 뿐이었습니다. 제 자식을 하루 두 번, 두 시간씩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밤낮으로 돌보는 선생님들의 힘과 마음을 저는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애정 가득한 눈으로 아기를 바라봐 주시고, 엉뚱한 질문에도 다정하게 답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선생님들 손길 덕분에 아기의 출발이 더 편안했을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가면 지금보다 곱절로 힘들고 어렵겠지만 선생님들이 알려주셨던 방법들 잊지 않고 잘 키워보겠습니다. 항상 소독제를 바르느라 손이 건조하실 것 같아 핸드로션으로 작게나마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존경과 감사를 담아 309호 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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