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서 기적 같은 나날들 Ep.6
한때 세상의 모든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쉬지 않고 떠들며 내일이 없는 것처럼 술을 마시던 모임이 있었다. 그중에 내가 과학 박사라고 일컫는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은 늘 술에 취해있어도 우주 이야기를 할 때면 눈에 힘을 주고 양자역학부터 상대성 이론, 빅뱅 이론까지 술술 풀어냈다. 나는 그 형이 하는 말은 일말의 여지없이 믿었다. 7년 주기설도 그중 하나이다. 사람의 몸은 7년을 주기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세포가 새것으로 교체된다는 것이 '7년 주기설'인데, 이 설의 방점은 '그러므로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에 찍힌다.
스물셋의 나는 선망 섞인 오기로 가득했고 자주 웃고 울기를 반복했다. 약속을 곧잘 어기고 당당했다. 오고 가는 술잔에 기대어 기세 등등한 밤이 잦았다. 50층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옥에 사원증을 찍고 통과하는 대기업 커리어우먼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몰라서 그릴 수 있었던 스물셋의 들뜬 꿈. 그래서일까. 그 당시 사진 속 나를 보면 노랗게 염색한 단발머리에 서클 렌즈를 착용하고 눈꼬리를 길게 빼는 아이 메이크업 덕분에 까랑까랑해 보이지만 어딘가 어리숙하다.
7년이 지난 지금, 자주 웃고 자주 우는 것은 여전하다. 강릉 집에서 서울 집으로 돌아갈 때면 한참이나 사이드미러로 안녕을 건네는 선녀 할머니의 모습에 울고, 갓 튀긴 휴게소 핫도그에 웃는다. 25층짜리 건물에서 3개 층을 빌려 쓰고 있는 스타트업 회사의 때묻은 평사원으로 '자아실현은 회사 밖에서'라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다. 꽤 오랫동안 좋아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SF 영화 대신 이름 모를 감독의 가족 영화에 별점 5점을 매기며, 다정하고 무탈한 일상을 기대한다. 요즘은 염색은커녕 헤어 에센스조차 쉬이 쓰지 못하는 임산부 신세지만 이 정도면 퍽 예쁜 임산부라고 달래며 흐린 눈을 크게 떠본다.
스물셋의 나와 서른의 나. 어느 때의 내가 맞고 틀렸는지 비교할 수 없다. 그저 7년 동안 나를 잃고 지우고 깨닫고 배우고 다시 부숴서 또다시 내가 되었다. 매미는 열흘 남짓되는 짧고도 긴 생애를 위해 꼬박 7년을 땅속 애벌레로 산다고 한다. 아무도 치워줄 일 없는 나무 기둥 여기저기에 벗어버린 성충의 허물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또 얼마나 남은 생애를 위해 어떻게 애벌레의 시간을 보내고 어떤 모양의 허물을 남겨둘 것인가. 7년 뒤의 모습을 감히 가늠조차 하지 못하여 서른으로 보낸 지난 몇 개월을 더듬어본다.
2022.11.08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