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서 기적 같은 나날들 Ep.5
매 순간의 공허를 뭔가로 채워 넣기 위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우리의 조바심이 저들에게는 얼마나 가소롭게 비칠까. 혼자 있어서 외롭다느니 우울하다느니 삶의 의미가 없느니 하는 푸념조차 부끄러워하는 법을 배우는 한 해가 되기를, 그렇게 내 속에 숨어 있는 식물의 시간을 깨우는 새해가 되기를 겨울나무들 앞에서 소망해본다. - 안규철, 사물의 뒷모습 <식물의 시간>
본격적인 태동이 시작된 지 어느덧 10주째. 18주부터 시작된 태동은 배고픔의 신호와는 확연히 다른 소리와 미세한 떨림으로 찾아왔다. 한 주 한 주 움직임이 커지더니 지금은 머리의 방향을 알 수 있을 만큼 제법 단단한 존재감으로 우리를 매번 깜짝 놀라게 하는데, 가끔은 거짓말을 살짝 보태서 장기의 위치를 바꿀 기세로 배속을 크게 휘젓고 다닐 때면 신기하기도 무섭기도 하다. 지금껏 알지 못해 바란 적 없었지만, 이제는 매일 눈 뜨는 순간부터 원하게 된 그 움직임. 그래서 혹여라도 잠잠하면 걱정이 되어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편안한 자세로 고요하게 눕기를 하루에도 몇 번이다.
요 며칠 비가 요란하게 내리더니 하늘은 좀 더 높아지고 햇살은 더욱 선명하다. 소파에 누워 배에 손을 얹었더니 가을이 산란하는 그림자를 따라 내 안의 작은 생명도 꿈틀거린다. 일도 만남도 여행도 멈춘 나날이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생명력이 넘친다. 예정대로라면 올겨울 혹은 내년 봄에 깨어날 새 생명의 시간. 몸을 더 단단히 따뜻하게 웅크려보는 가을이다.
2022.10.13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