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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해향취 Apr 26. 2023

챗 GPT에게는 있습니까? 영혼이.

평범해서 기적 같은 나날들 Ep.11


영혼이 문체를 만들어. 영혼이 없는 글은 문체가 없어, 예진아.

한참 동안 쌓인 메일을 정리하다 구독 중인 한 뉴스레터가 눈에 들어왔다. 챗 GPT와 사람이 쓴 카피라이팅의 클릭률을 비교하는 뉴스레터였다. 내용이 궁금했지만 결과를 알고 싶지 않아서 패스했다. 챗 GPT는 인공지능 챗봇으로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사람과 대화하듯 답을 해주는 시스템이다. 심지어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의제기까지 가능해 인간이 묻는 엉뚱한 질문에 인공지능이 현명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간 것이다. 얼마 전에는 챗 GPT와 작가가 협업을 통해 소설이 출간되었는데 어떤 독자는 이 글이 인공지능이 쓴 글인지, 어느 저명한 작가가 쓴 글인지 분간이 어려웠다고 답했다. 몇 개의 지시문을 가지고도 작품에 버금가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니! 새삼 기술의 발전에 감탄은 개뿔. 내 밥그릇을 피도 눈물도 없이 뺏어갈 경쟁자처럼 느껴졌다.


나의 직업은 커머셜 콘텐츠 에디터이다. 뭐 일단 직함은 그런데 현재 직장에서는 글쓰기 역량이 그다지 중요치 않은 분위기라 ‘에디터’로 불리는 것이 참 머쓱하다. 에디터의 첫 번째 역량은 글쓰기 능력임을 늘 강조했던 전 직장 팀장님의 빨간펜 가르침에 의하면 말이다. 글로 밥 벌어먹고사는 사람도 아니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챗 GPT의 존재는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내심 내가 맡은 일을 챗 GPT 씨가 대신한다 해도 놀랍지 않을 만큼 업무에 대한 회의감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휴직에 들어가자마자 브런치 스토리에 작가 신청을 한 것도 앞서 말한 회의감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 가서 4년 차 에디터라고 말하기엔 나의 글쓰기 능력이 심히 퇴화되고 있었기에.




막상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하고 나니 아기를 돌보면서 글을 쓰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아기의 패턴에 따라 글쓰기의 흐름도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한번 끊기면 다시 이어 붙이기까지 꽤 많은 힘이 필요했다. 특히나 글을 쓰면서 주제를 완성해 나갈 때는 더욱 그렇다. 다시금 챗 GPT가 눈엣가시가 된 것도 마무리 문단에서 헤매던 날이었다. 잠시 환기나 하려고 SNS 둘러보기 중이었는데 어떤 이의 필력을 칭찬하며 인공지능이 쓴 것 같다는 댓글을 보았다. 사람이 쓴 글을 보고 챗 GPT 같아서 최고라 칭찬하다니. 하다 하다 이제 글쓰기 능력까지 인공지능에게 역전당한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 한 문단조차 마치지 못해 빙빙 돌고 있는 나는 인공지능보다 못한 것인가? 그러다 이내 어차피 남들도 다 쓸 텐데 나도 챗 GPT 씨에게 마지막 문단을 좀 부탁할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N번째 에피소드는 인공지능이 아닌 남편의 말 한마디로 완성되었다. 남편에게 챗 GPT 씨의 존재를 아시나요?로 시작해서 인공지능이 쓴 글을 어느 저명한 작가의 글로 착각한 독자의 일화, SNS에서 본 댓글, 그래서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사라졌다는 것까지 쉬지 않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인공지능보다 더 담백하고 명료하게 한마디 했다. 영혼이 문체를 만들어. 영혼이 없는 글은 문체가 없어, 예진아. 그의 대답은 현답 중에 현답이었다. 챗 GPT인가 GPS인가 하는 녀석이 제 아무리 빅데이터를 등에 업고 청산유수로 글을 써낸다 한들 영혼이 없다 이 말이다. 영혼이 있는 한 나는 인공지능 따위에게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글쓰기를 멈출 이유도 없었다.


본인도 인정한 無영혼 작동설
양심은 있는 챗 GPT 씨


남편의 말에 나는 힘을 잔뜩 얻어 영혼빨로 글을 마무리했고, 이틀 전 브런치 스토리 메인에 올라오는 첫 쾌거를 이뤘다. 보기 좋게 정리된 시리즈도 아니며 혹할만한 키워드도 없었다. 챗 GPT처럼 논리 정연하게 쓴 글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인간만이 생각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순간과 감정을 썼을 뿐인데 그날 조회수는 1만 회를 훌쩍 넘겨 18,477회로 마무리를 했다. 글은 읽는 사람이 있어야 힘이 생긴다. 나는 독자들로 하여금 18,477배의 힘을 얻은 셈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행운을 기다리며, 또 영혼이 문체를 만든다는 남편의 말을 자양분 삼아 오늘도 나는 내 영혼의 말들을 꾹꾹 눌러 담아 한 편을 쓴다.


ps. 나의 첫 번째 독자이자, 교열자이자, 편집장이자, 문하생을 자처한 남편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2023.04.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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