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치 출근

집筆 라디오 001

by 무해향취

하루 일한 회사에서 하루치 급여가 들어왔다. 어제 산 루아 운동화 한 켤레 값에 못 미치는 돈이다. 숫자로만 찍힌 급여를 손끝으로 세듯 바라보며, 첫 출근이자 마지막 퇴근인 날을 떠올린다.


첫 출근의 이야기는 출근 전날 밤부터 시작된다. 인스타그램에 출근을 앞둔 심정을 써서 올리고, 남편에게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며 훌쩍거리다 출근룩 패션쇼로 요란스럽게 마무리했다. 늘 그렇듯 패션쇼의 관객은 남편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가장 마음에 든 옷을 골라 입고 몇 개의 신호등을 건너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골목을 지나 수원 행궁 근처에 위치한 회사에 도착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여름의 수원 행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서울살 적 북촌이나 서촌에서 일하고 싶던 로망이 여기에서 실현되는구나 싶어 들뜨기까지 했다. 내 등 뒤로 담배를 문 무표정한 여자가 팀장이라는 사실을 모를 적에는. 사무실 모퉁이에 놓인 어수선한 데스크가 내 자리라는 걸 모를 적에는. 퇴근 10분 전 대표의 진두지휘 하에 막중한 업무들이 덜컥 정해질 줄 모를 적에는.




아침에 왔던 길인데도 퇴근길은 왜 그리 멀고 험한지. 분명 집과 접근성을 고려해서 고르고 고른 회사였는데 말이다. 물살을 가르듯 도착한 집에는 미처 옷도 갈아입지 못한 남편과 산발이 된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6개의 눈동자를 동시에 마주했을 때 나는 회사가 아닌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편을 택했다. 하루치 급여는 아이 운동화 한 켤레 값에도 못 미쳤지만, 그 날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선택은 나의 몫이어도 그 결과값은 언제나 이들과 함께 짊어진다는 사실을. 그것은 곧 선택지를 선명하게 만들어줄 테지만, 그만큼 제약이 아주 많아진다는 걸 의미했다.


다음 날 나는 사정상 어쩔 수 없이 근무를 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메일을 보냈고 회사는 담담히 퇴사 처리를 해주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아이를 키우면서 앞으로 얼마나 어쩔 수 없단 말을 어쩔 수 없이 자주 쓰게 될까.


길은 늘 생각보다 멀고 험하다.


2025.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