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筆 라디오 002
지난 몇 달간 간서치(看(볼 간)’, ‘書(책 서)’, ‘痴(어리석을 치)’. 즉 책만 보는 바보)를 자청하며 책을 많이도 읽었다. 꼭 무엇을 바라고 읽은 것은 아닌데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그들처럼 글을 잘 쓰게 된다거나 영감이 마구 솟아오른다거나 하는 극적인 일은 물론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못 쓸 거면 쓰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에 닿기도 했다. 글에 대해 말할 사람이 없으니 챗지피티를 붙들고 내 글을 분석해 달라고도 했는데 나의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예쁘장한 글'이라고 했다. 사실 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건 챗지피티가 나의 연약한 성정을 이미 분석하고 돌려 말했을 뿐 해석한 문장과 다름없다.
글이라고 할 법한 나의 첫 글쓰기는 초등학교 6학년 방학 숙제로 낸 일기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뾰족한 샤프심으로 꾹꾹 눌러 적은 일상들이 새 공책을 두텁게 부풀렸다. 엄마는 사춘기가 올 법한 나이인 데도 불구하고 아이다운 순수함과 위트를 퍽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그냥 자주 만나서 이모라고 부르도록 한 이들에게도 한 장씩 보여주었다. 줄줄이 붙은 칭찬에 얼굴이 뜨거웠지만, 속으로는 그 짜릿한 순간을 기다리며 과장된 성실함으로 썼던 것 같다. 선생님과의 은밀한 주고받음도 좋았다. 선생님은 빨간 펜으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다정한 코멘트를 써주었다.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는 게 좋아서 일기를 멈출 수 없었다.
14살이 되던 해, 엄마는 마흔 살의 늦깎이 초등 교사가 되어 철원으로 발령을 받아 떠났고, 중학교에 올라가자 일기장은 숙제 목록에서 사라졌다. 일기 대신 수행 평가 문제를 풀고 나면, 선생님은 점수만 적어주었다. 코멘트 없는 종이는 너무 조용했다. 일기는 더 쓸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니 나의 글쓰기 시작은 나를 위한 글쓰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자랑거리가 되거나 은밀한 주고받음을 위한 것. 그래서 나의 글쓰기는 늘 조금 외로웠는지 모른다. 열혈 독자를 반드시 필요로 했으니까.
어제는 집필라디오라는 꼭지로 첫 글을 올렸다. 집에서 쓰는 라디오 오프닝 같은 글이라고 해서 뚝딱뚝딱 붙인 이름이다. 지구력이 부족한 내게 주는 미션은 단순하다. 집에서 쓸 것. 길게 쓰지 않아도 될 것. 이 두 가지면 이틀에 한 번꼴은 글을 완성하지 않을까 싶었다. 줄곧 남편은 일상 속 영감이 많은 나에게 라디오 작가를 하면 행복감을 느끼며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독려해 왔다. 그러면서도 글을 써서 얻고 싶은 게 무엇이고 또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건 무엇이냐며 이제 막 시작한 1인 1 독자 라디오 작가에게 야속한 질문을 던졌다. 대답하기 어려워서 바쁜 척 밥상이나 치웠다. 빈 그릇을 들고 가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대답 없는 질문으로 시끄러웠다.
어제 몰랐던 대답을 오늘 알 턱이 없다. 아마 내일은 더 모를 테지. 다만 글을 쓰는 이유가 나를 위한 것이기를 바란다. 나를 위한 글쓰기도 결국 누군가에게 건네지는 순간이 올 텐데, 그 시작은 반드시 내 편이 되어주는 문장이어야 한다. 그런 문장을 쓸 때면 언젠간 내가 더 내가 되거나 어쩌면 더 크고 멋진 내가 될 거란 믿음이 생긴다. 나의 글쓰기 종착지는 원대한 것들과는 멀다. 기세나 배짱도 없고, 소심한 바람일 뿐이다. 그래도 그런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순하게 살고 싶다.
2025.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