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筆 라디오 009
무슨 중 2병이 걸렸나 싶겠지만 근래 들어 기어이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있다. 리얼 미.
올해로 서른 넷이 된 나를 중 2병으로 만든 건 피드를 넘기다 보면 어김 없이 튀어나오는 AI 활용법을 소개하는 영상들이다. “요즘 AI 이렇게 안 쓰면 큰일납니다.” “아니. 아직도 AI 이렇게 쓰세요?” “당신이 쓰는 프롬프트가 절대 안 되는 이유 N가지” 대게 이런 식으로 시작해서 보통 알맹이 없이 끝난다.
이런 영상들의 수법(?)을 알면서도 안 보자니 손해 보는 것 같고, 보고 있자니 AI 시대에 여우를 꿈꾸는 미련 곰탱이가 된 기분이다. 골이 아파온다.
세상이 AI를 외칠수록 남편과 ‘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일이든 마음이든, 정성에 가까운 쪽으로 살고 싶다는 이야기. 우리가 들인 정성만큼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돌아온다는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를 굳게 믿고 싶다. 요행과 아주 아주 멀고 느린 이야기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은 AI와 친한 척을 할 수밖에 없어 여우의 탈을 쓴 곰이 되어 효율을 말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되어야 하는 진짜는 책과 책 사이에 있다는걸. 집 밖을 나설 때면 한 장도 읽지 않더라도 쑥과 마늘이 되어 줄 두 권의 책을 꼭 챙겨 나간다. 조금 걷다 보면 어깨가 아파질 걸 분명 나는 알고 있지만, 이건 말하자면 동굴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을 무기다.
그러니 어깨가 저릴지언정 리얼미를 외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202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