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이름에 대한 단상

by 선영

서선영. 내 이름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선영이가 존재 할까? 초등학교때 같은 반에만 선영이가 3명이나 있었고, 30하고도 3년을 사는 동안 선영이는 어디에나 존재했다. 김선영, 박선영, 이선영. 이뿐이던가. 선영 펜션, 선영 횟집, 선영 교회, 선영 미용실. 입만 아프다. 나이스 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대한민국에는 99,300명의 선영이가 있고, 심지어 성까지 같은 서선영은 무려 556명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흔해 빠진 이름이다.


“어, 쟤 이름도 선영이네.”

“왜, 너무 흔해서 싫어?”

TV를 보다 무심코 흘러 나온 말에 아빠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물어온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순간 당황해서는 엇, 말문이 막혔다. 묵묵부답 앞에 축 쳐진 어깨는 나의 착각이었을까? 순간 케케 묵은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6살쯤이려나. 외갓집에 갔던 어느 날, 옆집 사는 또래 아이를 만났다. 나는 스스로를 “보라”라고 소개했다. 아무도 모르게 “서보라”로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6살의 깜찍한 일탈(?)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튿날, “보라야, 보라야, 놀자”하고 대문 앞에서 목청껏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보라가 누구야?”하는 엄마의 물음에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에서였을까? 그날 엄마의 표정이 색이 바랜 사진처럼 아득하게 남아있다. 따뜻한 눈빛이었지만 조금은 씁쓸한 미소를 띠고 있었던 것도 같다. 아빠도 그 때 일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본인이 직접 지어 준 이름이 싫은지 묻는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빠의 질문에 ‘보라’라고 거짓말을 하고 숨긴 것 처럼 괜히 심장이 쿵쾅거리고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따라붙었다.


아빠는 나의 이름을 짓기 위해 몇 날 며칠 옥편을 정독했다.(고 한다. '엄마 위키'에서 발췌했으니 정확도, 신뢰도 100%이다.) 엄마의 이름에서 “선”을 하나 따왔으니, 단 한 글자를 정하기 위해 옥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것이다. 그 열정은 결국 피(코피)를 부르는 참사를 부르고야 말았다. 심지어 출생신고를 하러 동사무소에 세 번이나 갔다. 갈 때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를 만나서라나. ‘선영’이라고 지어서 출생신고 하러 간 날엔 마침 선영이가 한 명도 없었고, 그렇게 나는 ‘선영’이가 되었다. 아빠는 이렇게 많은 선영이가 존재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려 구만구천삼백명의 선영이말이다.


‘선영아 사랑해’라는 광고가 크게 히트치면서, 놀림도 많이 받았다.(심지어 2022년 현재에도 이름을 소개하면 고릿적 광고를 들먹이는 사람이 있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언젠가 보편성의 대명사가 된 이름을 두고 불평불만을 늘어 놓았을 것이 뻔하다. 분명 흔한 이름이 싫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서선영, 내 이름을 어느 누가 감히 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善映. 착할 선, 비칠 영. 세상을 선함으로 밝게 비추는 사람. 당신의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길 바라며 고르고 또 고른 글자. 직접 지어준 이름으로 평생을 부르고 또 부를 이름. 이렇게 사랑이 가득 담긴 이름은 이 지구, 아니 우주에서 단 하나뿐이다.


이름이 싫으냐고? 아니. 나는 세상에서 내 이름이 제일 좋다. 제일 멋지고 사랑스러운 이름.


내 이름은 서선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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