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
숨을 힘껏 들어마신 후 눈을 감고 차가운 액체 속으로 머리를 넣는다 그리고 천천히 힘을 빼고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물과 한 몸이 되어 거대한 우주 속을 홀로 유영하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살다 보면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싶은 날들이 있다. 거듭되는 실패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실패의 이유, 걸어온 길을 따라 돌아가 땅을 파헤쳐 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계속 원점으로 되돌아와 땅을 파헤치던 날들.
끝이 없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환기가 필요했던 어느 추운 겨울날 수영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영강습 첫날 쿠팡에서 주문한 초보자용 수영복 세트를 입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냉기가 감돌던 푸르른 공간에 25m 레일 8개가 길게 뻗어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큰 창이 나있어 수영장 안으로는 햇빛이 부서지고 있었다. 8개의 레일 중 어디로 갈지 몰라 쭈뼛대다 안내에 따라 첫 번째 레일에 들어왔다. 수영을 해본 적 있냐는 강사의 말에 처음이며 운동신경이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신이 나를 만들 때 졸다가 운동능력은 넣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태생부터 운동에는 재능이 없다. 학창 시절 장거리 달리기 기록을 재는 날이면 아직 돌아야 할 바퀴가 한참 남았음에도 내 뒤에 남은 사람은 없어서 더 이상 뛰지 않아도 됐다. 남들보다 느렸고, 느리다 보니 재미가 없었다. 재미도 없고 재능도 없는 운동을 배우기 위해 내 두 발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물속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한 일은 호흡을 배우는 것이었다. 물속에 있을 때는 코로 내뱉으며 음- 밖으로 나와서는 입으로 마시며 파-, 머리를 물에 박고 음- 파- 음- 파-를 1시간 동안 반복하다 보면 나는 왜 고통을 돈 주고 사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두 번째 시간에는 벽을 잡고 발차기를 배웠다. 거북이 등딱지 같은 것을 등에 매고 발을 굴렸는데 영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선생님이 갸우뚱 거린다. 선생님께 다시 한번 운동신경이 없다는 말을 강조한다.
수영을 다니던 시기 매일 집에 돌아와 일기를 적었다. 킥판이 없으면 물에 뜨지도 못하지만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아니 조금 재밌었던 1월 17일, 처음으로 킥판이 없이 자유형을 성공 한 2월 23일, 한 번도 쉬지 않고 자유형으로 한 바퀴를 완주한 4월 11일, 처음으로 한 팔 접영을 배운 4월 25일, 한 팔접영을 하면 계속 물을 먹어 포기하고 싶던 5월 4일, 하지만 3주 만에 한 팔접영을 연결한 5월 13일.
시험에 떨어지고 다시 시작할 용기가 필요했던 22년의 겨울, 아침에 일어나면 대충 세수를 하고 자전거로 20분 거리의 수영장에 가서 일주일에 3번 수영을 배웠다. 공부는 치사하게도 나는 분명 매일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붓는 기분이었고 어제는 분명 알았던 건데 오늘 다시 보니 기억이 안 나 나를 의심하고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매일 일기를 적으며 나의 성장을 관찰했다. 수영을 하면서 운동을 싫어하고 물을 무서워하던 내가 물에 뜨고, 평생 못할 거 같던 한 팔 접영을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게 위로와 확신을 얻었다. 수력 3년 차 이제 안 쉬고 30바퀴를 돌고 나비처럼 날아 올라서 접영을 한다고 하면 좋겠지만 난 여전히 느리고 접영도 잘하지 못한다. 거기다 수태기까지 와서 한 바퀴 돌고 언제 끝나나 시계를 보기 바쁘다. 하지만 12시간은 자야 회복되던 체력이 7시간만 자도 괜찮아졌고(1년에 76일이나 벌다니!) 몸에 있던 군살이 줄어들었다. 수영장 바닥에서 찾았던 빛을 기억하는가? 언젠가 다시 나를 괴롭히는 힘든 날이 찾아온다고 해도 2년 전 일기장에 써내려 갔던 그 마음을 잊지 않기를, 꾸준히 꾸준히.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영화, 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