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에 대하여
눈이 펑펑 내리던 11월 어느 날 하늘을 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더 이상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쓰레기를 생산하지 않겠다고.
내가 세상에 태어나니 언니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들이 줄줄이 태어났다. 평생을 나눠가져야 하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갇힌 채 세상을 마주한 것이다. 온전한 나의 것을 가져본 적이 없는 어린이의 마음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결핍을 나를 배신하지 않는 손바닥만 한 사소한 물건들로 채워 나갔다. 그리고 그 작은 것들에 마음을 주다가 주다가 너무 깊게 사랑하게 되어 버렸다. 최초로 수집이란걸 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마 중학생 때였던 거 같다. 내가 다니던 종합학원에는 수업이 끝나면 1시간 동안 영어 단어를 외우고 집에 가야 하는 자습시간이 있었다. 수업과 자습시간 사이에 30분간의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친구들과 잠시 나가 간식을 사먹고 들어오곤 했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거나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나는 꼭 학원 앞에 있던 슈퍼마켓에 가서 아줌마에게 케로로빵이 들어 왔냐고 물어봤다. 쿠루루의 초코롤이나 도로로의 콘햄빵이 내 주종목이 였지만 사실 내 목적은 빵보다는 빵 봉지에 하나씩 들어있던 작은 띠부띠부씰에 있었다. 띠었다 붙일 수 있는 귀여운 케로로스티커를 얻기 위해 슈퍼마켓 아줌마에게 매일 얼굴도장을 찍으며 스티커를 수집했다. 그리고 이렇게 애지중지 모인 케로로띠부띠부씰은 나에게 너무 사랑받은 나머지 단 한번도 어디 붙어보지 못한 채 아직도 서랍 한구석에 보관되고 있다. 그 뒤로도 많은 것들을 모았다. 미술관에서 마음에 들었던 그림의 엽서라던가 여행을 다녀오면 하나씩 사 오는 마그넷, 좋아하는 가수의 레코드판, 컵과 접시.. 수집만 하면 다행이지 물건도 잘 버리지 못한다. 여러 계절을 옷장에서 지내고 있는 옷이나 어느 전시회를 갔다 영감을 받았다고 모아둔 팜플렛이나 패키지가 예뻐 남겨둔 포장상자는 1년에 한번 잠시 추억 회상용으로 쓰였다 금방 제자리에 들어가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기념품으로 실용적인 물건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랬더니 손톱깎이가 5개가 되버렸다. 분명 사소한 것은 나에게 행복이었는데 이제 집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방금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접겠다면 산 행운의 아기별 접기와 눈이 마주쳐 애써 외면해 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이건 저주다. 물건과 사랑에 빠져 걸린 저주 사소한 것에 너무 마음을 줘버려 빠진 저주.
지구의 온도가 너무 높아져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죽고 말 것이라고 파리에서 협정을 맺고 툰베리는 회의장에서 연설을 하지만 어쩐지 남의 나라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여느 때보다 길어진 여름과 더 이상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있으니 이제는 진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물건 사지 않기, 육류 섭취를 줄이고 음식 남기지 않기, 일회용품 받지 않고 장바구니 들고 다니기, 환경오염의 가속화가 너무 빨라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것보다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기술이 개발되는 것이 더 빠르다고 내가 하는 사소한 행동들은 의미가 없다고 누군가는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은 원래 의미 없는데 사는 것이다 마음 속 사소한 신념의 나침판이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