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by TJ

그녀는 누가 보기에도 건강했다.


친척으로써 그다지 자주 보진 않았어도 그녀의 싹싹하고 밝은 미소는 다소 어색했던 집안 행사 때마다 빛내주는 듬직한 빛과 같았다. 덕분에 나도 밝아진 텐션을 유지하여 재밌게 지내던 기억이 크게 애쓰지 않아도 남아있다.


나보다 비록 한 살 어렸지만 어른 같았던 그녀는, 와이프의 친척으로써 장인어른의 형님의 큰딸이었다. 어렴풋이 듣기론 어려운 형편에 지내는 부모를 도와가며 매일, 매년을 열심히 살던 청년이었고 그런 와중에도 밝음을 유지하며 가정에도 사회에도 빛을 밝히는 한 명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꾸고 있던 꿈이었을까. 아니면 꾸지 않았음에도 빛을 보고 쫓아온 또 다른 빛이었을까. 얼마 전 늦게나마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녀와 유사하게도 듬직한 친구를 만나 알콩달콩 살아간다고 들었을 때, 먼 관계임에도 행복하고 단란하게 잘 지내길 진심으로 바랐다.


여전히 종종 행사 때마다 만나 안부를 맞이하는 와중, 우리 부부가 아기를 가진 것과 비슷한 시기에 그쪽 부부도 아이를 가진 것을 들었다. 이미 노산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시험관시술까지 거치며 어렵게 갖게 된 아이는 그 가정에 행운과 많은 행복을 가져다준 것 같았고, 집안 입장에서 볼 때는 겹경사라고 볼만하여 서로 기뻤다.

어느 날 우리 부부가 아기를 낳고는 정신없이 적응기를 겪어가던 그로부터 한 달 후, 무사히 순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과정도 들은 김에 설명하자면 힘들게도 제왕절개를 거쳐 건강한 아이를 세상에 내보냈다고 했다. 다행히 그녀도 아이도 모두가 건강했고, 단지 후처치 후 몸의 안정이 기다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며칠간 새롭게 찾아온 두 아이 덕분에 처가 댁네가 모처럼 웅성웅성했다. 일찍 나오느라 조금 작게 태어난 우리 아이보다 무려 1kg나 차이 나게 건강한 아들로 태어난 그쪽 집 아이가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와 다른 남아인 것도 신기했다. 서로 사진과 영상이 오가며 귀여운 모습들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행복한 하루하루가 지나가던 어느 아침 사건이 터졌다.


분명 전화 너머에서 "죽었다"라고 했다. 밤새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병원에는 산모였던 그녀, 보호자 남편, 그리고 아기가 있었는데 셋 중 누구라는 것인가.

너무 놀랐지만 마음을 진정하고 대충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녀가 사망한 것이었다.


상대가 병원임에 당연히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사인, 상황은 이러했다. 제왕절개를 하고 나면, 당연히 장기의 올바른 위치복귀가 필요하여 맹장이 터졌을 때처럼 가스가 반드시 나와야 하나, 가스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산모에게 병원에서는 그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식사를 며칠간 부여했다고 했다. 당연히 제왕절개로 인한 진통제와 가스유도를 위한 링거 등도 여전히 유지한 상태로 나오지 않는 가스와 계속되는 식사로 불편한 시간이 지속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젖이 돌면서 소중한 모유를 먹이기 위해 힘겹게 유축한 모유를 직접 아가에게 주기 위해 수유실로 부부가 이동하자마자 그녀가 쓰러졌다고 했다.

원인이 뭐였는지 모르지만, 좀 아까까지 모자동실에서 아기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산모는 심한 과호흡으로 수유실에서 쓰러졌고, 수유실의 다른 산모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러 의료진을 불렀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도 바로 수유실로 들어가 상황을 확인했더니 의료진의 우왕좌왕한 대처와 "천천히 숨 쉬세요 산모분!"만 애타게 외치고 있었다고 했다.

곧이어 도착한 의사는, "엠부(수동 인공호흡기) 가져와!"라고 했으나, 이런 일이 모처럼 일어나지 않던 지방 산부인과 의료진들은 엠부만 덜렁 가져오는 바람에 다시 부품을 가지러 갔다가, 엠부로 안될 거 같으니 "산소통 가져와!"라고 하는 등, 시간이 한참 지연됐다고 했다. 그 와중에 산소통마저도 결합하는 부품은 잊은 채 산소통만 가지고 온 것도 사실.


이 모든 상황을 그의 남편이 발만 동동 구르며 쳐다보고 있다가, 119 긴급구조에 전화하겠다고 했다고 했을 때, 의사가 "무슨 병원에 119야! 내가 조치할 수 있어!" 라며 다급하게 말렸다고 한다. 그러고는 넘어가고 있는 산모에게 기도삽관을 시도했으나, 의사조차도 흔치 않던 사례에 따라 삽관을 식도에 하면서 골든타임은 이미 넘어가고 말았다. 고개와 손이 축 쳐진 산모를 바라보며 그녀의 남편이 현장에서 나와, 몰래 119에 신고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윽고 도착한 구조대원에게 의사는 오히려 화를 내며 여기서 조치하자고 그들을 병원에 머무르게 했다고 한다.

구조대원들은 열악한 지방 산부인과에서 뭘 하겠냐며 의사와 옥신각신 하다 결국 다른 지역의 대학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그 사이 이미 그녀는 심정지 상태였다.


누구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했던 그녀가 죽었다.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피를 나눈 친척들 보다도 근래 많이 본 그녀가 허망하게 갔다. 밝았던 빛이 또 다른 빛을 낳았지만, 허무하게도 져버렸다. 좋은 사람을 하늘에서 먼저 데려간다던 말이 맞았던 건지 애써 그런 말 밖에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우리 가족과 너무 근접한 시기에 아기를 낳은 것이 더욱더 마음이 쓰였다.


언젠가 배우 조승우가 출연하는 병원드라마에서 그런 대사가 있던 것이 생각이 난다. 지방에서 아이를 낳으면 중국에서 보다 산모가 많이 죽는다던 그 대사는 드라마에서만이 아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사례였다.


(이것은 8월의 이야기로 장례까지 마치고 난 현재 가족의 아픔이 여전한 채 사실확인과 소송등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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