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수도권에 남아 있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겠다는 정부의 이전 계획이 속속 들리고 있다. 세종시 출범과 혁신도시 건설로 대표되는 1차 이전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어섰지만, 여전히 주요 기관 다수는 수도권에 머물러 있다. 이번 2차 이전은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라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다시 꺼내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1차 이전의 결과가 정부의 청사진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세종시는 ‘행정수도’라는 상징을 얻었지만, 완전한 자립도시는 되지 못했다. 중앙부처와 산하기관이 입주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기업과 문화 인프라가 따라오지 못하면서 ‘주말이면 텅 비는 도시’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혁신도시들도 비슷하다. 공공기관은 들어왔지만, 정작 인구 유입이나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는 공공기관 이전이 단순히 건물만 옮기는 행정적 조치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각 지자체는 이번에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공공기관 유치는 단순히 간판 하나를 세우는 일이 아니다. 수백 명의 직원이 이주하고, 이들이 지역에서 소비하며 생활하는 과정은 곧바로 지역 경제와 인구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에게는 기회가 되고, 상권에는 새로운 활력이 돌 수 있다. 지방 도시들이 경쟁적으로 손을 들고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환영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에 남아 있는 기관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호소한다. 기관의 효율성은 물론, 직원 가족들의 교육·주거 문제가 걸려 있다. 대법원이나 기업은행, 산업은행처럼 국가 시스템의 핵심에 해당하는 기관까지 지방 이전 논의에 오르내리자 반대 여론도 거세다. 단순한 행정 효율의 문제를 넘어 삶의 기반을 통째로 흔드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균형발전’이라는 대의와 ‘개인의 삶’이라는 현실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후보지로 거론되는 지역들의 전략은 저마다 다르다. 부산은 동북아 금융 허브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유치를 주장하고, 광주와 전남은 에너지와 농업 중심 도시라는 특성을 살려 한국전력거래소와 농협·수협 중앙회의 적합성을 강조한다. 제주는 국제 관광지라는 강점을 앞세워 한국공항공사와 한국마사회를 노리고 있고, 대구는 대법원과 데이터산업진흥원 이전을 통한 법조·첨단 도시 도약을 꿈꾼다. 지도 위에 각 지역의 이해와 비전이 얽혀 경쟁하는 모습은 한 편의 거대한 전략 게임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공공기관 이전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한 도시에는 활력을 불어넣고, 다른 도시에는 공백을 남긴다. 균형발전을 내세운 정책이 자칫 또 다른 불균형과 갈등을 낳을 수도 있다. 지역은 기회를 얻지만 개인은 희생을 강요당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어느 한쪽의 승리나 패배로 단순히 정리될 수 없다.
공공기관 이전이라는 거대한 이사는 결국 도시의 얼굴을 바꾸고, 사람들의 삶을 재편한다. 그러나 세종시와 혁신도시의 전례가 보여주듯, ‘기관 이전=도시 발전’이라는 단순한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계획만으로는 도시가 살아 숨 쉬지 않는다. 민간의 투자, 생활 인프라, 시민의 삶이 따라붙을 때 비로소 진짜 균형발전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또다시 대규모 이전 계획이 추진된다.
균형발전이라는 명분 뒤에서 정치적 셈법이 우선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실패를 되풀이할 때 그 대가는 결국 국민이 짊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