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4.5일제”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 한국 사회는 또다시 뜨거운 논쟁 속으로 들어갔다.
어떤 이들에게는 주말이 반나절 더 늘어나는 상상만으로도 삶이 달라질 것 같은 희망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인건비 증가와 생산 차질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겹쳐 보인다. 내 가정에서와 같이 아주 작은 단위 사회에서도 남편은 직장인이고 아내는 사업대표로서 정책을 기대하거나 반대한다. 대한 상공회의소 보고서가 지적하듯, 지금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임금 상승률만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는 현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에 곧장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특히 영세 중소기업들에게는 그 타격이 생존의 문턱을 흔드는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물론 주5일제 도입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변화가 항상 불가능한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2004년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점진적으로 시행되었던 주5일제는, 2011년에 이르러서야 중소기업에까지 전면 확대되었다. 당시에도 반발은 적지 않았지만, 정부의 보완 정책과 경제의 안정적 성장세가 뒷받침되면서 제도는 결국 사회적 합의로 안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고물가·저성장·세계 경기 침체라는 삼중고 속에서 이미 기업들은 주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의 파고를 버티고 있다. 준비 없는 ‘주4.5일제’ 도입은 제도의 취지가 아닌 현실적 부담으로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면 분명 시사점이 있다. 아이슬란드는 2015년부터 4일제 실험을 진행했고, 공공부문 중심의 시범 운영 결과 업무 효율성이 오히려 유지되거나 일부는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과 스페인 역시 비슷한 시범 사업을 통해 근로자의 삶의 만족도와 생산성 사이에 긍정적인 연관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사회적 합의와 정책적 지원이 치밀하게 병행되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근무일수를 줄이자”는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임금체계 개편·업무 프로세스 개선·노동 유연성 확대 같은 구조적 개혁이 함께 이뤄졌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이와 달리 한국의 현실은 그 준비 수준에서 의문부호가 붙는다. 노동시간 단축의 긍정적 효과는 분명 존재한다. 여가 확대는 소비 진작으로 이어질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삶의 질 향상과 사회적 활력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당장 맞닥뜨리는 비용 부담과 경영 압박은 단기간에 상쇄되기 어렵다. 사회적 이득과 경제적 비용 사이의 간극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주4.5일제는 “좋은 취지였으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 제도”라는 전철을 밟을 위험이 크다.
주4.5일제 논의는 단순히 ‘일을 줄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는 한국 사회가 “삶의 질 향상”이라는 이상과 “기업 생존”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듯, 노동시간 단축은 준비와 합의, 그리고 사회 전체의 인식 전환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 경쟁이 아니라 사회적 설계의 치밀함이다. 그 점을 놓친다면, 주4.5일제는 개혁의 깃발이 아니라 소모적 논란의 불씨로 남을 뿐이다.
결국 중요한 건 속도와 방식이다. 주5일제가 단계적 도입을 통해 안착했듯, 주4.5일제 역시 전면 일괄 적용이 아니라 선택적·단계적 도입이 필요하다. 기업 규모와 업종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책,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 전환, 생산성 혁신을 위한 기술 도입 같은 구체적 보완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제도는 또 한 번 정치적 구호에 머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