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중 가장 기대가 컸던 도시는 단연 바르셀로나였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감동이 전해지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직접 마주하고 싶었고,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낸 최고의 아름다움을 가족과 함께 가슴에 새기고 싶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린 시절부터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자연 속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낸 구조물에 더 끌렸고
여행을 계획할 때도 늘 도시의 건축을 중심에 두곤 했다.
서울에서의 삶이 길어진 지금은 다시 자연을 찾고 있지만,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 오래 잠들어 있던 그 관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바르셀로나에는 수많은 건축 작품이 있지만,
그 중심에는 역시 가우디가 있다.
현대 건축의 선구자로 불리는 루이스 설리번이
가우디를 “돌로 시를 쓰는 사람”이라 표현했다는 말이 있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아, 까사 밀라, 까사 바트요, 구엘 공원을 마주하는 순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여행에서 건축물을 통해 느끼던 감동은
멀리서 바라볼 때의 웅장함, 그리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드러나는 정교함이었다.
하지만 가우디의 작품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설계에서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담긴 ‘사람에 대한 배려’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특히 까사 바트요는 외관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충분히 압도적이었지만,
내부를 둘러보며 그 감동은 더욱 깊어졌다.
물결 모양의 유리창과 푸른 타일은
바다 속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설계된 것이었고,
빛의 양에 따라 창문의 크기와 타일의 색을 달리한 세심함은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 그 자체였다.
물결치는 유리창 너머로 올려다본 푸른 중정은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고,
우리 가족은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구엘공원의 배수 시스템, 까사 밀라의 조각 같은 굴뚝까지
하나하나가 감탄을 자아냈고,
바르셀로나에서의 3일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짧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감동의 정점에는 사그라다파밀리아가 있었다.
처음 마주했을 때는 그저 압도당했다.
각 파사드에 새겨진 이야기와 조각들은
단순한 건축을 넘어선 경외심을 느끼게 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고개를 숙인 채 걷다가
정해진 지점에서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아이의 탄성과 함께 나 역시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 순간의 공기와 감정은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성당 내부는 또 다른 세계였다.
정교한 조각 대신, 빛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동쪽에는 푸른 스테인드글라스, 서쪽에는 붉은 스테인드글라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부의 색과 분위기가 달라지도록 설계된 공간.
우리가 들어갔던 오후의 성당은 붉은 빛으로 가득했고,
그 몽환적인 풍경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다.
돌과 빛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건축가.
가우디를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말은
결국 “돌로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셀로나를 걸으며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런 위대한 것들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내가 내린 답은 ‘풍요로움’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지어진 서울의 건물들은
대부분 기능에 충실한 사각형이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서울에는 점점 더 개성 있는 건축들이 들어서고 있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유가 없는 삶에서는 생존이 우선이고,
예술과 아름다움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충분한 여유가 주어진다면
사람은 더 새로운 것, 더 아름다운 것을 꿈꾸게 된다.
마흔이 넘어서야 글을 쓰기 시작한 나 역시
어쩌면 그런 여유가 조금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득 생각해 본다.
내 아이는 생계를 걱정하기보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꿈꿀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일까?
바르셀로나의 골목을 힘든 줄도 모르고 뛰어다니며
모든 것에 감탄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희망을 떠올렸다.
가우디의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도시지만,
카탈루냐 음악당, 산 파우 병원, 고딕 지구까지
바르셀로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고 이 나이에도 다시 꿈을 꾸게 만드는,
희망의 도시였다.
<추신>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은
비니투스에서 먹었던 푸아그라 안심 타파스였다.
너무 만족스러워 같은 식당을 두 번이나 방문하게 했던 그 맛은,
다시 바르셀로나를 찾게 만들 이유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