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인간의 삶
글이 길어지면 복잡하기 때문에 본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 물론 금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은 명명히 이성을 초월하고 편향시킨다. 그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러니 '절제'라고 하는 것이다. 필요한 한계를 인정하고 그 초월성을 능동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한 인간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맺어지는 타인과의 관계는 개인과 개인의 필요성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필요성'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타인이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를 포괄적으로 뜻하는 말이다. 친구사이의 우정과 재미도 개인이 원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고 연인끼리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개인과 개인이 서로가 필요할 때 우리는 교류할 수 있다. 너무 염세적인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지향성이 없는 관계는 목적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모든 것이 수동적인 인간이라는, 자유 없는 인간을 말하게 되어버린다.
앞서 말했든 세상은 개인과 개인의 교류이다. 근데 학교폭력은? 이유 없는 비난, 무논리 등 세상은 교류를 원하지 않는 일방적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이 많다. 왜일까? 그것은 대부분 감정 때문이다.
학교 폭력. 나는 그들을 잘 알고 있다. 1. 꼴불견이다 2. 재미있다. 이 2가지 이유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대부분 둘이 융합된 형태이다. 남을 괴롭히는 이유가 고작 위의 것들이라니? 아무리 보아도 이성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논리와 이유 없는 비난도 마찬가지이다. 우기거나 상대를 낮추어 까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 모든 것은 감정이 원인이 아닌가?
개인과의 일방적인 관계는 자기모순을 불러온다. 남을 이용하는 순간, 자신이 맺은 모든 관계는 부정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자신의 삶의 방식이 진실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남을 이용이나 하는 자가? 남을 이용한다면 자신의 친구, 가족, 연인 또한 스스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진실되지 않은 자는 스스로를 말할 수 없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 그러니 필요 없는 감정은 절제해야 한다. 자기가 싫다고 욕을 한다면, 아무 곳에나 배변하는 동물과 뭐가 다른가? 욕망만을 따라서는 안된다. 감정은 이성을 초월할 때가 있지만, 그 후에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