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성격 유형을 극적으로, 문학적으로 표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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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요? 내가 정신병자라는 거.
썩은 과일.
과일을 제대로 보관하지 안거나 오래 내버려 두면 썩어요. 어째서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안 썩은 과일’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을까요? ‘ 안. 썩. 은. 과. 일. ‘ 별로 안 길잖아요? 아마 과일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안 썩은 상태를 전제하는 말이기 때문이겠죠. 그렇기에 우리는 과일이 썩으면 버려요. 썩은 과일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창조주에게 따질 수는 없는 걸까요?
‘나는 왜 이렇게 되었나요? 나는 왜 썩어버린 건가요?’ 하고.
하지만 그렇게 물어도 대답은 없어요. 아니다, 있긴 하겠네요. 물이 아래로 흐르듯 당연한 진리를 따라가다 보면 말이죠. ‘우연’입니다. 그 과일이 썩은 것은 아무도 이유를 몰라요. 아마 안에 벌레가 있었거나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있어 살이 곯았던가 했겠지요. 탄생은 같았지만 처음부터 악운이 있었을 뿐입니다.
창조주에게 도움을 청할 수는 없는 걸까요?
‘자, 봐요. 내 안을. 썩어버린 나의 모습을 봐줘요. 그리고 나를 고쳐줘요.’
하지만 이런, 애초에 창조주가 없었군요. 그러면 주인에게 말해볼까요? 아니요. 그런 말을 했다가는 버려질 것입니다. 썩은 과일은 자신이 썩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두려워합니다. 또, 부끄럽기도 하고요 미안하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자신의 속이 썩어가는 것을 느끼며 평범함 사이에 끼어있는 것이 썩은 것의 최선이 아닐까요? 그 누구도 썩어있다고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러면 나는 느낍니다. 아! 이런 것이 평범함이라고요. 하지만 왜인지 그 평범함 속에서 무뎌질 줄 알았던 썩어감의 고통은 너무나 맑습니다. 정신이 깨어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썩었다는 변하지 사실 때문이겠죠.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썩었다는 사실을 되뇌며 비정상의 편에 설뿐이에요. 그래야 자신의 고통을 설명할 수 있을뿐더러 그 편이 편하니까요.
자, 나를 바라봐요. 나는 썩었을까요 썩지 않았을까요? 맞춰봐요. 아마 당신은 맞추지 못하겠죠.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정답이 정해져 있을 테니까요.
나는 썩지 않았아요. 믿지 못하나요? 맞아요. 사실… 나는, 썩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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