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에 대해서 1.

도덕과 선악에 대한 고찰

by 상실

# 선 악에 대해서.

(저는 철학가가 아니고 그 정도의 수준도 아닙니다. 반박 환영!)

*앱 변환문제로 특수문자가 보이는 점 양해부탑드립니다ㅠ


매일 글을 써야 하는 만큼, 저만의 작은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평소에 관심 있던 선악에 대해 다루어보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불완전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모르던 사실도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겠죠. 제가 읽었던 책 중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무엇을 아는지’** 를 공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좋은 말이죠. 저는 모르는 것을 공부하고 아는 것을 파고 들려합니다. 3ㅡ4일 정도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네요.


앞으로의 목차

1. 선에 대해서

•도덕.
1. 가장 위험한 사상.


•선.
1. 시야와 지성의 죽음.
2. 위선.
3. 영웅.

2. 악에 대해서
1. 보편성.
2. 세뇌
3. 죄책감
4. 악행의 기준.

1. 선과 악에 대해서.
1. 살인.
2. 사형.
3. 동정과 죄인의 목줄.




# 선(善)에 대해서.

도덕.

저는 선과 도덕을 나누어 이야기하려 합니다. ‘선한 행위 = 도덕적 행위’라는 형식이 존재하기도 하고 실제로 많은 선이 도덕적인 모습을 띄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그 둘이 같은 개념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악은 하나의 현상에 가깝고, 도덕은 그것의 기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도덕에 관해 이야기해보죠. 도덕이 선악의 기준이라면 그 기준은 어떻게 자리 잡았고 기준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 도덕은 도덕적인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실 건가요? 저는 아니라고 답할 것입니다. 아무리 도덕이 인간이 진화하며 내재된 본능이라 해도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도덕본능이 그렇게 강하다면 사람이 사람에게 죽을 일은 없을뿐더러 전쟁과 자본주의의 폐허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도덕은 일종의 규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배가 아무리 고프더라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과, 죄책감을 짓누르고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은 결국 개인의 최종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그것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도덕은 모두가 지닌 약속입니다. 쉽게 말해 프로이트의 **‘초자아(superego)’** 와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머릿속에서 울리지만, 절대적이지 않은 것. 그것이 도덕입니다.

도덕은 도덕적인 것은 아닙니다. 도덕은 사람들을 조종하고 옳은 것이기 때문에 의심조차 하지 못 하게 합니다. 만일 우리의 도덕이 잘못되었다면, 우리 사회는 피 비린내가 감돌았을 것입니다. 도덕은 모두가 따르기에 가장 좋은 ‘규칙’입니다. 어떤 이가 배워도 피해가 적은, 오히려 사회에 득이 되는 규칙.


우리 모두 보편 도덕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덕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본래 도덕은 선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도덕은 윤리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내면의 도덕적인 선은 결국 윤리의 모습을 띄고 있다는 거죠.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것. 남을 도울 것. 남을 배려할 것.’

선은 대부분 **‘타인’** 을 향한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도덕이 따르는 선은 윤리의 모습을 띄고 있고 윤리는 타인을 위한 이타적 모습을 선으로 규정합니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윤리가 타인의 위한 모습을 띄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고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저는 도덕의 기준만을 말할 뿐입니다.

도덕의 기준과 초자아의 기준은 보통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태생적으로 타고나지 않습니다. 성악설을 기반으로 합니다. 아이들은 선악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후천적으로 옳게 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학습합니다. 이 이후로 도덕은 어디서 왔는지 까지 이으면 글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다루어 보겠습니다.

제가 조금 전 선악은 현상이고 도덕은 선악의 기준이라고 했죠? 도덕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그것을 넘어 선악의 형성 과정에 대해 서술해보겠습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나누어 이성을 거치기 전, 사건의 플마(±) 척도를 선(先) 인식합니다. 쉽게 말해 좋고 나쁨으로요. 그것은 꼭 자신에게 이득 손해를 따지는 것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포함한 모든 것, 즉 ‘**마이너스**’는 상실, 이별, 비탄, 분노, 억울함, 설움등을 불러오는 자신에게 안 좋은 모든 일을 말하고 ‘**플러스’**는 행복, 사랑, 쾌락, 기쁨, 정열 등 모든 일을 포함합니다. 도덕이 선악의 기준이라는 이유는 이 대목에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그림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위 그림은 제가 그린 선악의 형성 과정입니다. 선악의 형성 과정에서 도덕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잘 보이죠.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선악은 하나의 현상이고 도덕은 선악의 기준이 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겪으면 인간은 감정을 통해 좋고 나쁨을 선인식하며 이후에 이성을 통해 판단합니다. 그것이 무슨 일이든이요. 사소한 취미나, 친구와 싸운 일,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 심지어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까지도 선인식은 유효합니다. 그러나 선인식에는 필연적으로 선악이 따라옵니다. 좋음과 싫음 있지만 중간은 없기 때문이죠. 자신도 모르게 선인식을 통해 원망과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건은 무엇이든 결국 이분법으로 선과 악이 되어버립니다.

선인식의 개념은 대충 잡았으니 플러스로 가보죠. 도덕 관련된 일임을 전제로 삼고 인간은 선인식을 통해 **‘사건+’** 의 **‘좋음’** 을 인식합니다. 후에 도덕과 관련된 일이기에 이성을 통해 **‘옳은가?‘** 를 점검합니다. 그 과정에서 쓰이는 게 우리의 속에 내재되어있는 도덕입니다. 위에서 말한 보편 도덕을 **‘기준’** 삼아 자신의 선악을 구분하죠. 이것이 제가 말한 도덕은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플러스 사건은 마이너스와 다르게 특이한 형질이 있습니다. 선악이 능동적이라는 거죠. **‘좋음’**에서 시작한 선악은 선이 전제가 되어있어 능동적으로 선악을 뒤바꿀 수 있죠.

**’ 선이지만, 이렇게 보면 악이 될 수 있다.’**

이제 마이너스로 가죠. 이건 쉽게 들 수 있는 예시가 있습니다. 타인에 의한 **‘살인’** 이죠. 타살을 사건 마이너스로 잡고 가겠습니다. 앞서 말한 이론들을 지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가의 질문에 악이라는 결론에 도착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살인은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악행이 됩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금기시되는 행위죠. 살인이 악행이라는 것에 반박할 이가 있을까요? 그렇게 우리 사회에 살인은 하나의 절대 악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건 마이너스를 이렇게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살인’** 또는 **‘도움을 주다 죽게 만든 것’** 이라면요? 한번 짚어보죠

마이너스인가요? ㅡ예.

도덕 관련인가요?ㅡ예.

도덕적으로 옳은가요?ㅡ아니요.

그렇다면 절대 악인가요?ㅡ

정당방위를 절대악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는 힘듭니다. 그렇기에 악 또는 수긍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죠. 옳았다고 해도 악이 될 수 있고 악행에 모두가 수긍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절대 악과의 차이점입니다. 하지만 결국 나쁨에서 시작한 선악은 악이 전제가 되어있어 **‘악’**이라는 것에서 벗아날 수는 없습니다.

**’ 악이지만, 이렇게 수긍할 수 있다.’**

**’ 누구도 저질러서는 안 되는 악이다.’**

제 도덕 이론에 대해서는 다 말한 것 같네요. 오해할 수도 있어 잠깐 말하자면, 선악의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이 아니라, 선악의 행위와 기준이 형성되는 것을 썼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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