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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의 숨은 보석, 과테말라

조금 별난 대학생의 세계여행 - #6 GUATEMALA

by 김태호 Feb 20. 2025


2024.12.22. ~ 2024.12.26., 2024.12.28. ~ 2024.12.30. (총 7박) | 여행경비: 북중미 3개국 312만원, 과테말라 체류 비용 138만원 | 화산부터 호수와 유적까지, 팔색조 매력의 숨은 보석


서울 인천국제공항  과테말라시티 라 아우로라 국제공항 (아메리칸항공 댈러스 경유, 편도 20시간 소요)

과테말라시티 → 안티과 과테말라 ·  아카테낭고 → 과테말라시티 → 플로레스 · 티칼 → (벨리즈) → 플로레스 → 과테말라시티 → 안티과 과테말라 → 파나하첼 · 아티틀란 호수 → 안티과 과테말라 → 과테말라 시티


기본 정보: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나라로, 태평양과 대서양 모두에 접해있다. 수도는 과테말라시티로 한국과의 시차는 -15시간이다. 화폐는 케찰을 사용하며 (5 GTQ = 약 1000원) 언어는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과테말라를 상징하는 문화/자연 경관: 식민지 건축, 화산, 마야 유적


유명 관광지: 안티과 과테말라, 티칼 유적, 아티틀란 호수


먹어볼 것: 뻬삐안, 과테말라 커피

해볼 것: 아카테낭고 산에 올라 화산 터지는 것 구경하기

사올 것: 마야 공예품, 치킨버스 모형, 커피


여행 팁: ATM에서 케찰을 인출할 것 / 겨울에는 큰 일교차에 대비할 것 / UBER로 안전하게 다니기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져있지도, 많이 찾지도 않는 나라지만 역사부터 문화와 자연까지 다채로운 중미의 숨은 보석. 진정한 라틴아메리카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과테말라로.


중앙아메리카의 과테말라는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여행지가 아니다. 사실, 여행지로의 인식 보다는 갱단과 강도가 많은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이 더욱 흔하다. 그렇지만 내가 다녀온 과테말라는 문화와 자연 모두 다채롭고 볼 것이 많은, 아메리카의 숨은 보석이었다. 비행기표가 저렴하게 나와서 다녀온 나라지만 마야 문명의 신전부터 스페인 식민지 건축까지, 그리고 울창한 밀림부터 화산에서 분출하는 용암까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들을 많이 보고 올 수 있었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른 중남미 국가의 관광지들과는 다르게, 이곳에서 본 여러 풍경들은 라틴아메리카 본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과테말라는 한국에서의 직항이 없어, 미국 또는 멕시코를 경유해서 가야 한다. 나는 2024년 연말, 미국을 경유하는 아메리칸항공을 이용해 과테말라와 그 옆에 있는 벨리즈를 다녀왔다. 인천에서 댈러스까지 대략 12시간, 그리고 댈러스에서 또 3시간을 더 날아가 과테말라시티에 12월 22일 새벽에 도착했다. 과테말라는 케찰 (GTQ; quetzal) 이라는 화폐 단위를 사용하기 때문에 공항에서 환전을 먼저 해야 했다. 공항 내 환전소는 환율이 좋지 못해 (여행 당시 달러당 6.1케찰) ATM으로 인출하는 것을 추천한다. (여행 당시 달러당 7.4케찰) 숙소는 과테말라의 역사적인 도시 안티과에 잡았고, 이 곳은 차로 공항에서 50분 거리에 있다. 과테말라의 치안이 워낙 안 좋기로 유명해 (아마 내가 다녀온 나라들 중에는 가장 위험한 나라인 것 같긴 하다 - 그치만 관광지를 다닐 때에는 위험하다는 느낌을 별로 받지 못할 정도로 상황은 괜찮았다) 우버를 불러서 이동했다.


나는 시차적응을 잘 하는 편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시차적응에 완전히 실패해 이 날 숙소에 들어간 뒤 2~3시간 밖에 잠을 못 잤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아주 일찍 하루를 시작했다. 전날 못 본 마을 풍경, 특히 마을 배경으로 거대하게 솟아있는 화산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시내를 거쳐 Fernando's Kaffe라는 카페에서 조식으로 커피 한 잔과 함께 크레페를 먹었다. 과테말라가 커피로 유명하니, 빨리 과테말라 커피를 맛보고 싶었다. Black Fernando라는 메뉴 (카페 특색 메뉴인 듯 하다) 를 마셨는데,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아침을 보내니 좋더라.


안티과는 전에 다녀온 볼리비아 수크레와 마찬가지로 옛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 역사도시이다. (두 도시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수크레는 건물들이 흰색과 갈색으로 대부분 이뤄져있어 깔끔한 느낌의 도시인데 비해, 안티과는 건물들이 알록달록해서 예쁜 도시인 점이 두 장소의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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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과 과테말라 (김태호, 2024)


안티과의 랜드마크 (더 나아가 과테말라의 랜드마크라고 해도 될 듯 하다) 는 산타 카탈리나 아치라고 불리는 건축물이다. 오래된, 다채로운 색의 건물들이 있는 거리 위로 놓인 아치인데 배경의 화산과 함께 건축물이 어우러진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안티과 또는 과테말라를 대표하는 장소로 촬영되어 여기저기에 소개된다. 도시 한복판에 있어 꽤 자주 마주치게 되는 곳인데, 우리는 안티과를 관광한 뒤로도 여러 차례 이 도시를 들러서 (공항과도 멀지 않고, 치안도 좋은 편이라 거점 도시로 삼기 좋다) 산타 카탈리나 아치를 정말 많이 보았다. 유명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인데, 아침 일찍 오면 사람이 거의 없는 아치를 만나볼 수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산타 카탈리나 아치 (김태호, 2024)


마을 뒷편의 산에 오르면 있는 전망대에도 가보았다. 가는 길에 멀리 산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 날 가까이서 볼 푸에고 화산이 분화하는 모습인가보다. 난생 처음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을 보았는데,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치만 전망대에 올라서는 푸에고 화산 방향은 잘 보이지 않더라. 그래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마을의 모습은 배경의 아구아 산 (또 다른 화산) 과 함께 어우러진, 멋진 풍경이었다.


도시에는 여러 성당들과 폐허들이 많다. 폐허가 많은 이유는 옛날에 강한 지진들이 몇 차례 일어난 결과인데, 이 때문에 과테말라의 수도가 이 곳에서 현재의 수도인 과테말라 시티로 이전하기도 했다. 이 날 하루종일 안티과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여러 거리들과 중앙시장 등, 도시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안티과가 유서깊은 역사도시여서 그런지, 외국계 프렌차이즈 상점들도 그런 도시 분위기에 맞춰 영업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안티과에 있는 식당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맥도날드 매장 중 하나라고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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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과 과테말라 (김태호, 2024)


박물관 한 곳도 둘러보았다. MUNAG (Museo Nacional de Arte de Guatemala) 라는 박물관인데, 과테말라의 고대 ~ 현대 예술에 대한 전시를 해놓은 곳이다. 사실 과테말라 같이 상대적으로 예술이 안 유명한 나라들의 미술관을 다니면 세계적인 명화를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런 곳에서는 그 나라의 풍경을 담은 그림과 같이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작품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 방문하는데 있어 나름의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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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AG, 안티과 과테말라 (김태호, 2024)


함께 여행온 친구가 숙소에서 쉬는 동안 유적 두 군데를 둘러보았다. 전에 들렀다가 미사 중이라 들어가지 못한 큰 성당 (광장 바로 옆) 과 오래 전 지어진 뒤 지진으로 폐허가 된 성당 두 군데를 찾았다. 첫 번째 찾은 성당도 뒷편에 폐허가 된 구역이 있어서 20케찰을 내고 들어가 관람했다. 두번째로 찾은 성당은 Convento Santa Clara 라는 곳인데, 폐허 규모는 이쪽이 더 방대하고 볼 것이 많았던 것 같다. <다빈치 코드> 에 나올 것 같은 예배당스러운 건물부터 로마의 aqueduct 같은 구조들을 볼 수 있었다. 성당을 본 뒤 시간이 늦어져 숙소로 돌아가,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마을 거리를 밝히고 있더라. 저녁 식사는 과테말라 음식인 pepian de pollo를 먹었는데, 닭고기 카레랑 비슷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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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ento Santa Clara, Antigua Guatemala (김태호, 2024)


안티과 근처에는 푸에고 산이라는 활화산이 거의 항상 분출하고 있으며 그 옆에 있는 아카테낭고 산에 오르면 이 화산 분출을 잘 볼 수 있어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다. 하지만 아카테낭고는 3,976m로 상당히 높고 트레킹 난이도가 힘들기로 악명높다. 우리는 안티과를 둘러본 다음 날, 이 화산으로의 트레킹을 시작했다. 내가 경험한 트레킹 난이도를 먼저 이야기하면, 3600미터 근방의 캠프까지는 생각보다는 그리 힘들진 않았고 (덕유산 정상 부근 급경사 오르는 느낌? 안 힘들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튿날 새벽 선택적으로 가는 정상 트레킹은 꽤 힘든 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산소가 부족해서 더더욱 숨이 찼다.)


아무튼 아침 일찍 안티과의 여행사 사무실 (여러 투어 회사 중 우리는 CA라는 회사를 선택했다) 로 향했다. 이곳에서 아침을 먹은 뒤, 밴을 타고 장비 보관소에 가서 트레킹 장비를 대여하고 화산으로 출발하는 일정이다. 아카테낭고 산 입구로 가는 길은 유럽 시골 느낌도 났다. 11:30 쯤, 대략 해발 2430m에서 트레킹 (이 아닌 등산, 그것도 꽤 높은 강도의..) 을 시작했다. 초입부터 길은 많이 가파르긴 했지만, 페이스만 적절히 조절하면 아주 힘든 구간은 아니다. (근데 그런 경사로 2시간 정도를 끊임없이 올라가긴 해야 한다.) 출발하고 1시간 정도 오르면 2800미터 부근에 쉼터가 나온다. (여기 가는 길에도 3군데 정도 쉼터가 있었던 것 같다.) 이 곳에서 수박을 사먹었는데 정말 맛있었고, 물 같은 것과 비교했을 때에도 가격이 그리 비싸지도 않았다.


13:30, 해발 3200m 지점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휴식할 때면 땀이 식어 꽤 추워져 감기나 체하는 것에 조심해야 할 듯 하다. (낮에 등산할 때와 새벽에 산 정상 간의 기온차는 정말 크다. 자켓이랑 바람막이 등을 껴입어도 새벽 산정에서는 춥다.) 이 곳에는 들개들이 사람들이 주는 밥을 먹고 살아가고 있더라. 비단 여기 뿐만 아니라 등산하는 중간중간 들개들이 마치 길을 안내해주듯이 우리를 따라다니더라.


아카테낭고를 오르다 보면 극초입의 경작지부터 중간의 울창한 숲, 그리고 고산지대의 고목들이 있는 풍경까지 고도에 따른 식생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구름이 있는 높이를 통과하면서 구름들이 흘러가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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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테낭고 트레킹의 풍경 (김태호, 2024)


출발한지 3시간 반에서 4시간 정도가 지나면 고도가 3500미터 정도에 접어들며 경사가 완만해지고 멀리 푸에고 화산이 분화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난이도가 낮아진 길을 걷다보니 4시 쯤 3,600미터의 캠프에 도착했다. 올라가는 길에 짧은 스페인어로 내 짐을 들어준 포터 안토니오와 여러 대화를 나누었는데, 덕분에 아주 지루하지는 않았다. 여행에서 현지인들과 현지 언어로 대화하는 것은, 내가 그 언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꽤 재미있는 경험이다.


해발 3600미터에 있는 숙소는 어느 여행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퀄리티가 달라진다. 우리는 2층 침대 2개가 있는 캐빈에서 다른 외국인 관광객 커플과 함께 지냈다. 짐이 많은 것에 비해 공간이 좁아 불편하더라. (불필요한 짐은 여행사 사무실에 두고 간다 - 그렇지만 등산에 필요한 장비들을 추가적으로 챙겨야 해서 짐이 큰 배낭 12kg + 물과 휴대용품 정도로 결코 적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포터를 고용해 큰 배낭을 직접 들고 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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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고 화산의 분화 (김태호, 2024)


캠프에서 보이는 건너편 산인 푸에고 화산은 꽤 자주 연기를 분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쩔 때는 연기만 조용히 나오고, 어쩔 때는 돌 같은 것도 튀며 꽤 격렬하게 폭발한다. 물론 우리가 있는 곳과의 거리는 꽤 되기 때문에 안전하게 화산을 지켜볼 수 있다. 어둠이 찾아오면 화산에서 분출되는 용암이 보이고, 때로는 분화하는 소리도 종종 들린다. 지구상 어디에서도 만나보기 힘든 풍경이다. 나는 캐빈 지붕에 올라가서 삼각대를 세워놓고 화산이 터지는 것을 찍었다. 밤에는 원하는 사람들에 한해 추가 요금을 내고 푸에고 산 앞까지 트레킹을 할 수 있지만, 너무 힘들듯 하여 우리는 참여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 4시 쯤 다시 등산에 나서 3,976m의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정말 험했고 (경사도 가파르고 길이 제대로 나있지도 않았다), 산소도 부족해서 꽤 많이 힘들었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새벽에 처음 일어났을 때 머리가 약간 아프긴 했지만, 나와서 찬 바람을 맞으니 괜찮아졌다. 볼리비아 갔을 때도 그랬고, 고산병이 없는 체질인 듯 하여 정말 다행인 것 같다. 아무튼 5:30 쯤 아카테낭고 정상에 올랐다. 내가 등산한 산 중에는 당연히 가장 높은 산이라 (백두산보다 1200미터나 더 높다) 해냈다는 성취감이 정말 컸다. 추운 정상에서 50분 정도 기다리니 해가 멀리 떠오르더라. 정상에서는 멀리 태평양부터 떠오르는 해를 산이 가려 만들어진 그림자 등 산 밑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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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테낭고 일출과 하산길 (김태호, 2024)


밝아지고 다시 캠프로 내려오는데, 길이 정말 험하더라. 특히 자갈/흙으로 된 길이 정말 미끄러워, 아에 발로 흙을 밀면서 캠프까지 갔다. 캠프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하산을 시작했는데, 올라올 때와는 다르게 금방 내려갔다. 물론 경사가 가파른 바람에 내려오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하산을 완료했다. 꼬박 만 하루 동안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니 정말 힘들더라. 매일매일 산을 오르는 포터들과 가이드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고, 편한 삶을 살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겠더라.


투어 사무실에 장비를 반납하고 다시금 안티과로 복귀했다. 안티과에서 카페를 들러 폰을 충전하면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우버를 불러 과테말라 시티로 이동했다. 과테말라 시티는 치안이 중남미에서도 정말 안 좋기로 유명한 도시고, 관광지도 많지 않아 여행객들은 지나치는 도시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테말라 북부 플로레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해서 과테말라 시티로 가야 했고, 기왕 가는 김에 도시도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렌트카 업체와 같이 있는 숙소여서 입구를 찾기 꽤 어려웠다) 씻은 뒤, 시내 구경을 나갔다. 과테말라 시티에서는 대중교통을 절대 타지 말라고 해서 이동 시에는 항상 우버를 이용했고 (우버는 탑승 시 확인 코드를 입력해야 하기도 하고, 기사 정보도 확인할 수 있어 비교적 안전하다), 관광지 위주로만 다녔다. 처음 간 곳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과 문화 궁전이 있는 Plaza de la Constitucion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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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 대성당, 과테말라 시티 (김태호, 2024)


광장 한 바퀴를 둘러보고 괜찮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자 우버를 불렀다. 아주 위험해 보이는 길들을 지나 나름 깔끔한 건물들이 있는 동네에서 내렸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했던 것은, 이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이며 카톨릭 국가인 과테말라에서는 중요한 휴일이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가려 했던 식당 뿐 아니라 근처 들르는 식당이며 상점마다 다 문이 닫혀있더라. 어두워진 시간에 중남미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중 하나를 헤매고 있으니 꽤 긴장이 되더라.


브런치 글 이미지 18
국립문화궁전, 과테말라 시티 (김태호, 2024)


한참을 헤매다가 (꽤 무서운 순간들도 있었다) 다행히도 외국계 호텔 한 곳을 겨우 찾아,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호텔 식당에서도 식사하는 사람들이 없더라. 나는 과테말라 스타일의 그릴과 칵테일 한 잔 (코스모폴리탄을 마셨던 것 같다) 을 주문했다. 식사 후에는 택시를 다시 불러, 공항 옆에 있는 우리의 숙소로 향했다. 공항 바로 옆이 숙소라서, 다음날 아침 일찍 걸어서 공항으로 향했다. 우리는 과테말라 시티의 라 아우로라 국제공항에서 TAG 항공이라는 현지 항공사를 이용해, 플로레스라는 도시로 날아갔다. 플로레스는 마야 문명의 가장 대표적인 유적인 티칼로 가긴 위한 거점 도시이고, 마을 자체도 알록달록해서 구경해볼만한 곳이다.


플로레스에 내리니, 열대 우림 한복판에 있는 도시라 그런지 날씨가 습했다. 이 도시에서 관광객들이 주로 가는 지역은 페텐 호수에 있는 Isla de Flores라는 섬으로, 우리의 숙소도 이곳에 있었다. 여기는 알록달록한 집들이 빽빽하게 모여있는 마을로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아침 일찍이라 그리 덥지도 않고, 사람이 많지도 않아 평화로웠다. 중미인데도 불구하고 마을에서 동남아시아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동남아와 관련이 있는 동네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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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레스, 과테말라 (김태호, 2024)


아침에 마을을 둘러본 뒤, 티칼 유적으로 가는 투어에 참가했다. 티칼까지는 마을에서 밴으로 대략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티칼은 유적이 밀림 한복판에 있는 곳으로, 국립공원 및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공원 입구에서 티켓을 구입한 뒤, 차로 조금 더 들어간 후 공원 내부로 걸어가게 된다. 숲 속을 좀 걷다 보면 신전 하나가 나타나고, 그렇게 티칼에서 가장 유명한 1번 신전을 만나게 된다. 1번 신전 맞은편에는 위에 올라가볼 수 있는 2번 신전이 있고, 그 사이에는 광장이 놓여져 있다. 광장 중앙에 서서 박수를 치면 소리가 특이하게 울리는 것도 들어볼 수 있다. 아마 건물의 배치를 과학적으로 설계해서 그러지 않을까 싶다. 오지 밀림 속에 이러한 유적이 있다는 것과 이곳을 또 발견했다는 점이 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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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칼 국립공원 (김태호, 2024)


가이드와 함께 유적을 둘러보는 투어였는데, 덕분에 티칼 유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단, 스페인어와 영어 두 개 언어로 설명을 하는 바람에 스페인어로 설명할 때에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점이 아쉬웠다.)


티칼 지역에는 정말 많은 유적들이 존재하는데, LIDAR 센서로 이 구역을 조사한 결과 15,000개의 구조물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한때는 인구가 25만명이나 되었던 대규모의 도시였으나 버려진 뒤, 특정 진액이 나오는 나무를 찾던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의외였던 점은 티칼 문명이 금을 사용하지 않았고, 스페인 정복자들이 들어온 시기와도 600년 정도의 시간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남미 문명에 대해 떠올리면 금이 많이 갖고 있고, 이를 노린 스페인 콩키스타도르들에 의해 멸망하는 류의 이야기를 생각하기 나름인데 티칼은 그렇지 않더라. 다만 인신공양과 같은 문화는 여기에도 존재했다고 하더라. 아무튼 티칼 문명이 버려진 이후 마야 원주민들은 과테말라 남서부, 아티틀란 호수 근처로 이주해 현재까지 언어 등 문화가 내려오고 있다. 일부 (특히 지식층) 는 더 북쪽, 멕시코 유카탄 반도로 이주해 아즈텍 문명의 사람들과 섞이게 되었다고 한다. 아티틀란 호수 쪽으로는 지식층들이 이주하지 않아 마야 건축의 명맥은 끊겼으며, 1500년대가 되면서 스페인에 의해 과테말라는 유럽의 식민지가 된다.


나무로 덮인 3번 신전 앞을 지나 4번 신전에 갔는데, 이 곳 역시 오를 수 있는 높은 건축물이었다. 4번 신전 위에 올라서면 정글과 나무들 위로 머리를 내민 신전들을 볼 수 있었다. 이 곳은 티칼 내에서도 유명한데, 그 이유는 스타워즈 4편의 촬영지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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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위로 보이는 유적들. 왼쪽 사진이 4번 신전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김태호, 2024)


티칼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플로레스로 돌아왔다. 플로레스에서 크리스마스날의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로 갔는데 숙소는 상당히 열악했다. 물론 습한 기후, 게다가 호수 위 집들이 빽빽하게 모여있는 작은 섬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긴 힘들다. 크리스마스여서 그런지 바깥에서는 큰 소리들이 계속 들려오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지었고 다음 날 우리는 과테말라 동쪽,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나라인 벨리즈로 넘어가 2박 3일간 여행했다.


이후 육로로 과테말라에 다시 입국한 뒤 플로레스 공항에서 과테말라 시티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플로레스에서 과테말라 시티로 이동하면 10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국경을 넘어 공항으로 가는 과정은 순탄치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촉박하게 국경을 넘어 비행기를 놓칠 뻔 했던 것이다. 밤 시간이라 택시 기사들도 국경에서 1.5 ~ 2시간 정도 떨어진 공항까지 가는 것을 꺼려했고 우리는 아무리 못해도 1시간 반 안에는 플로레스 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겨우겨우 총알택시를 연결받아 100달러를 내고 (워낙 급했던지라 그냥 지불했다. 흥정도 안 되었다.) 공항으로 출발할 수 있었는데, 가는 길은 상당히 위험했다. 기사님은 시속 150km 정도의 속도로 왕복 2차선 도로의 중앙선을 넘나들며 운전하시는데, 안전벨트도 없어서 사고가 나면 큰일나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여행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 top 3 안에 들지 않을까 싶더라. 결과적으로는 제 시간에,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는데 어쩔 수 없긴 했어도 꽤나 무모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비행기를 타고 과테말라 시티에 내려서는 다시 안티과로 이동해서 1박을 했다. 아티틀란 호수에 가고자 했는데, 많은 셔틀이 안티과에서 출발했기에 우리도 우선 안티과로 이동했던 것이다. 잠을 잠시 자고 새벽 일찍, 아티틀란 호수 관광의 거점 마을인 파나하첼로 가는 셔틀을 탔다. 파나하첼에 도착해서는 숙소에 짐을 두고 아침식사를 했다. 체크인도 마침 일찍 된다길래 식사 후 체크인까지 한 뒤, 아티틀란 호수를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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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틀란 호수와 파나하첼 (김태호, 2024)


이후 보트를 타고 호수 건너편, 마야 원주민의 문화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산 페드로 마을로 이동했다. 보트로 접근하면서 본 호숫가 마을들은 이탈리아 친퀘 테레나 우리나라의 감천문화마을 같은 느낌이 있었다. 마을 자체는 여느 중미 마을 같았고, 체험 같은 것을 안 해서 그런지 마야 마을로서의 특별한 점은 생각보다 없었다. 마을을 구경하고 다시 파나하첼로 돌아가는데, 아티틀란 호수를 보트로 가로지르는 것은 꽤 재밌더라. (호수 자체도 화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풍경이 멋지다. 날씨가 흐려서 풍경이 무채색 느낌으로 보였는데 멋있더라. 호수 위로 보이는 윤슬도 예뻤다.) 햇볕도 너무 안 강하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매우 적당한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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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페드로, 과테말라 (김태호, 2024)


파나하첼 시내는 기념품이나 공예품을 파는 상점들이 많아, 이들 상점을 많이 구경했다. 또한 파나하첼에는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어 한 번 방문해보았다. 과테말라에서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거의 못 보았는데, 카페에 들러 오랜만에 한국인들과 대화하니 반갑고 편안하더라. 카페 안은 한국 카페 같은 느낌이 났는데, 카페를 나서는 순간 갑자기 다시 중앙아메리카의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 꽤 신기한 경험이더라. 과테말라 시골 마을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국인들을 보니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삶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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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하첼, 과테말라 (김태호, 2024)


파나하첼은 중심가에 많은 상점들이 모여있고, 이 중심가를 벗어나는 뭐가 없더라. 얼추 마을을 둘러본 뒤, 숙소로 이동해 과테말라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다음 날 새벽, 다시 안티과로 이동해 여행 첫날 조식을 먹은 카페에서 다시 조식을 먹었다. 이후 과테말라의 명물 치킨버스 (현지 교통 수단으로 화려한 장식이 특징이다 - 여행객들은 안전 상 탑승에 유의해야 한다고 하더라) 들을 좀 더 보고 싶어서 치킨버스가 많은 시장 쪽으로 이동했다. (여행 중에도 치킨버스를 많이 마주치기도 했지만, 과테말라를 떠나기 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치킨버스들을 구경하고 시장에서 내 기념품과 선물들을 좀 사고 (흥정이 필수다) 택시를 불러 과테말라 시티 공항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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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버스 (파나하첼 & 안티과, 과테말라) (김태호, 2024)


과테말라 시티에서는 아메리칸항공을 이용해서 미국 마이애미로 출국했다. 새삼 무비자로 미국을 방문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나라가 꽤 괜찮은 나라라는 점을 느꼈다. 현지인들이 비행기를 타는 모습을 보니, 정말 많은 서류들을 안고 타던데 우리는 ESTA만 발급받으면 미국 입국이 가능해 국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과테말라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나라는 아니다. 치안이 좋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나라는 그들만의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정말 좋은 나라이다. 화산부터 열대우림, 그리고 마야 유적부터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건축까지 다양한 풍경을 가진 이 나라는 볼거리가 무궁무진해 충분히 가볼 가치가 있는 나라이다.


대략적인 예산 정리 [총액 1,381,000 KRW]  

    항공: 1,013,000 KRW (총액에서는 제외)  

    숙박: 182,000 KRW  

    과테말라시티 - 플로레스 왕복 항공료: 185,000 KRW  

    현지 교통: 308,000 KRW  

    식비: 192,000 KRW  

    투어 및 입장료: 212,000 KRW (티칼 투어: 36,000 KRW, 티칼 국립공원 입장료: 29,000 KRW, 아카테낭고 트레킹: 139,000 KRW (CA Tours), 안티과 성당 두 곳: 8,000 KRW)

    기타 (쇼핑, ESIM 등): 301,000 K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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