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다.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 때 취업을 위해 면접을 다녔다. 당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세일즈. 지금도 세일즈직 면접 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면접질문들이 꽤 보수적이었다. 세일즈직으로 면접을 볼 때마다 하는 질문은 1.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2. 여자인데 밤늦게까지 고객 모시고 세일즈 할 수 있겠어요? 같은 질문이 주를 이뤘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그리고 갓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나는 밤늦게까지 어떻게 고객을 모셔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렇게 여러 번의 면접 실패의 아픔을 겪는 중 또 다른 세일즈직 면접에서 인사팀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우리 인사팀에 자리 있는데 인사 한 번 해볼래요?" 나는 사실 인사팀이 어떤 업무를 하는 팀인지 몰랐다. 그런데 일자리를 약속한다는 달콤한 말에 얼른 오퍼에 사인해 버렸다. 그렇게 나는 10년 동안 인사일을 하고 있다. 인사팀 1년 차 때부터 난 이미 이 일이 하기 싫었고 다른 포지션으로 수도 없이 (지금까지도) 지원을 하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인사일과 관련된 곳뿐이다. 정말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 일을 10년 하다 보니 다른 일을 새로 배우기 귀찮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아직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하루하루를 고역처럼 인사일을 하고 있고 어느새 내 연봉은 1억이 넘어 다른 직무를 주니어부터 시작하자니 돈이 내 발목을 잡는다.
돈이 잡고 있는 내 발목이 무거워져 점점 떨어져 나가려고 한다. 그래서 내 발목이 떨어지기 전에 내가 먼저 돈을 버리고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더 이상은 돈의 블랙홀에 빠져 스스로를 매일 불행에 내던질 수 없다. 나에게는 아직 일한 시간보다 정년퇴직까지 앞으로 일할 시간이 더 많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인사일을 버리고 내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해 볼 계획이다. 오늘 당장 집에 가서 메일박스에 저장해 두었던 사직서를 발송해 버리고 말겠다. 그리고 나는 무직의 상태가 두렵고 새로운 일을 배우고 찾는 것이 무섭지만 내 일생의 남은 직장생활을 좀 더 즐기면서 하기 위해 도전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