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말라버린 꽃의 깊이

by kmz



스물다섯, 스물하나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 분명 어느 날 이 노래는 내 귀를 스쳤을 터이다. 한 방송의 배경음악으로 은은히 깔려있는 것을 듣던 그 순간이 처음은 아닐 테지. 아니, 확실히 아니다. 심장에 착 감기는 그녀의 음색을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그렇다면 어느 날의 나는 왜 이 노래를 희미하게 듣고 말았던 건지. 아직도 알 수는 없지만,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매년 부여되는 이 '숫자'를 인식하게 된 일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정확히 알고 제대로 들어본 것은 그 후가 처음이다. 이 노래는 강하고 찌릿하게 뇌리에 박힌다기보다, 은근하게 온몸을 맴돌고 있는 느낌이라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이미 감칠맛을 느낀 노래를 제대로 듣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가짐이야말로 가장 설레는 순간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처음 듣고는 노을 지는 빛과 그 아래 반짝이는 작은 꽃, 그러니까 코스모스 한 송이 같은 게 떠올랐다. 작지만 누가 봐도 소중하고 예쁘고 애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들을 때쯤엔 '마른 꽃'이 떠올랐다. 아름다워서 그냥 두니 말라버린. 그래서 파스락거리고 부서지기도 하는데 여전히 아름다웠음을 기억하게 되는, 그런 꽃 말이다.

아무래도 이 곡의 화자는 나에게 닿을 때마다 바뀌었던 것이 분명하다. 처음은 여느 스물다섯과 스물하나의 만남, 그리고 이를 뒤따른 이별과 추억을 노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졸졸거리는 이 작은 이야기를 한참 바라보며 흘려보내었다. 미련은 있지만 후회는 없는, 과거를 바라본 채 현재를 머무르는 어떤 인연에 관한 이야기이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도 없이 광활한 들판 같은 곳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허무하게 바람만을 매만지고 있는 스물다섯의 그를 바라보았다. 스물하나의 너가 아닌 스물다섯의 그가 내 눈에 들어온 이유는, 어리고 여렸던 상대의 서툰 모습과 그마저도 결국 아름다웠음을 추억하는 모습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는 혼자서 건조한 손끝을 느끼다가도, 눈망울은 과거의 너를 그리다 맑아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멋모르던 어린 시절 같은, 마냥 예쁘고 작은 꽃이 떠올랐다.

그러나 거듭 들을수록 그는 사라졌다. 내 시선에 남은 것은 오로지 그 광활한 들판에 서있는 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애초에 나였을 수 있겠다. 서늘한 바람을 얼굴에 쏘이며, 눈망울에 비치던 뭉글한 형상을 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리고 여렸던, 그리고 서툴던 스물하나의 나. 내가 나를 보고 있었다. 왈칵하였다.




영원할 줄 알았던




물론 오래 살았다고 하면 누군가에겐 웃음이 날 시간을 살아왔지만. 요새는 우리에게 매년 부여되는 그 '숫자', 그러니까 나이에 관한 노래만 들으면 왈칵하게 된다. 내 안에서 뭔가가 갑작스레 빠져 내릴 것 같은 그 느낌 자체도 그렇고, 눈물이 울컥 나오는 기분이기도 하다.

이는 분명 내가 아직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고, 그런 내가 언제나 애틋하기 때문일 것이다. '애틋', 이 단어가 온몸을 감싸버려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적절하다. 성인의 턱을 갓 넘은 스물하나에서도, 삶에 익숙한 척해야 했던 스물셋에서도, 지금에서야 막 맞이한 스물다섯에서도 그렇다. 아이유(IU)의 <스물셋>과 <팔레트(Palette)>를 곰곰이 듣고 있자면, 매번 와르르 눈물을 쏟곤 했다.

그렇게 보면 인생이란 다 비슷한 것일 수도, 아니면 음악가들이 유독 이런 인생을 잘 그려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은 어떤 나이대만이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무력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노래는 마치 생생하고 반듯한 꽃이 되지 못한 우리들 같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보면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 마른 꽃이 머릿속에 심어졌던 것이리라.

눈가에 맺혀있던 스물하나의 나를 바라보았다. 굳이 스물하나가 아니라 그 언저리의 나였을 것이다. 다 이겨내서 온 줄 알았더니 세상에 서 있기엔 아직도 후덜거리는 다리를 짚고 있었더랬지. 어딘가에나 존재할 모든 걱정은 또 다 나의 것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릴 수도, 누군가에게 속시원히 털어놓을 수도 없던 게 그때였다. 혼자서 부딪히고 아파하고, 일어났다가 무너지고, 툴툴 털다가 다시 더러워지고, 웃다가 울었다. 어떤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나약하게 만드는 건지 구분할 줄조차 몰랐다. 이제는 실수도 잘못도 없겠거니, 뭐든지 다 해낼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실수투성이에 후회 덩어리일 뿐이었다. 스물하나 근처의 나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그때의 나를 생각할 때 느껴지는 애틋한 이 감정은, 실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이다. 그래서 손에 잡힐 듯 그런 듯하다. 현재의 나 역시, 어렸을 적 생각해왔던 근사한 어른의 모습과는 아주 동떨어져 있다. 아직도 아파할 일이 많고 채워가야 할 틈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스무 살 초반의 미숙한 그 모습에 자책하고, 완성된 사람이 되고자 애썼던 순간들이 지금에선 아릿하기만 한 것이다. 그때는 아직 내가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다.

유독 엉엉 울고 싶었던 구절이 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영원하지 않다는 말은 공허하게, 또 후련하게도 만든다. 그 공허함과 후련함이 여기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될 쯤에, 울음이 터져버린다. 서툴고 한심했던 나는, 사실 낑낑거리며 하루하루마다의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밀어주고 있던 것이었다. 수고했단 말을 해주지도 못하고, 미래의 자신에게 꾸중만 듣던 그때의 모습은 더 이상 이곳에 없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곧 아름다운 시절이었음을 깨닫는 일이다. 그리고 아름다웠단 것을 알게 되면 다시 잡을 수 없다는 현실을 그제야 안다. 어렸던 나는 똑같은 나였지만, 과거란 이름을 달고서 그렇게 산산이 흩어진다. 그것이 울게 만든다. 늘 지나서야 안다니, 울면서도 웃긴 일이다.



말라버린 꽃의 깊이



요즘엔 '드라이플라워'라며 애초부터 일부러 생화를 말려 만들기도 하고, 생생했던 꽃을 받아서 묵묵히 잘 말려두기도 하니까, 마른 꽃도 이미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었다 볼 수 있나. 그렇게 보면 꽃은 여전히 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꽃은 꽃봉오리에서 피어오르는 때부터 생생한 절정과 시들어가는 순간까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간직한다. 아니 시들어져 있는, 곧 부스러질 것 같아 보이는 상태에서도 뭔가 고요하면서 은근한 매력이 있다. 빨간 장미가 시들어, 말갛던 얼굴이 짙고 컴컴한 붉은빛을 내보이며 고개를 푹 떨군 모냥을 생각해보자. 건조하여 가벼워 보이다가도 담담한 것이 묵직하기도 하다. 오롯이 생을 받아들였단 느낌에 거룩한 생각마저 든다.

그것은 우리가 꽃의 순간들을 기억하기 때문일까 싶다. 악착같이 피어올라, 결국 바짝 말라버린 상태가 되기까지의 그 시간을 그려본다. 꽃은 자신만의 시간을 머금고 있다. 그러니 말라버린 꽃은 오히려 생생한 꽃보다도 더 깊은 꽃이라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생생한 꽃을 전해 받았더라도(반드시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았다는 의미가 아닌, 꽃을 손에 들게 된 어떠한 모든 순간을 이야기하고 싶다.) 버리지 않는 이상은 누구나 말라 가는 꽃의 시간을 지켜보게 되지 않나. 이를 바라보는 일은 단순히 현재의 말라버린 모습 자체를 감상하는 것이라 하기엔 부족하다. 꽃을 손에 받아 들 때의 감각과 감정, 그날의 분위기, 그에 엮인 이야기와 사람. 이와 같은 모든 것이 마치 하나의 작은 결정체로 남는 것처럼 응축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듯하다. 그래서 현재를 통해 과거를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네 생명도 사실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 아니 믿으려 한다. 인간과 식물의 삶이 똑같다고 단순히 내뱉기에는 무책임하고, 그렇지만 우리 역시 시들어가는 존재인 것은 맞으니 믿는다고 말하는 편이 더 좋겠다. 이 노래를 듣고 마른 꽃이 떠올랐던 건, 나의 매 순간도 시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나로 피어나 나에게 전해진 시간부터 쭉. 그렇기에 지난날의 나에게도 나름의 색과 향기가 있던 것을 부디 잊지 않아야 한다. 나만의 시간을 머금고, 영원하지 않을 것을 늘 기억하며,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어딘가에 새기며 살아가야 한다. 언젠가 기억해내면 할수록 멀어져 갈지도 모르기에.

앞으로 더욱 말라가면서 색도 바래고 향도 사라지겠지만, 처음 너, 아니 스물하나의 나를 받아 들었던 설렘은 깊게 여물 것이다. 그 후로 여문 것들을 부서져가는 잎에 모두 담아서, 가장 깊을 끝의 순간에 흩어지도록 한다.



- 스물다섯의 내가 스물하나의 나에게



* B : 실제 가사를 인용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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