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택트] 지옥은 신의 부재

1997, 로버트 저메키스

by 한비

켄 리우의 [1비트짜리 오류]는 테드 창의 [지옥은 신의 부재]에서 영감을 받은 소설이다. 타일러는 리디아의 신앙이 뇌의 1비트짜리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타일러는 신을 믿지 않지만 리디아의 신앙을 사랑한다. 그래서 리디아가 죽은 후 자신의 뇌에도 오류를 일으켜 리디아의 신앙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1비트짜리 오류]와 [지옥은 신의 부재]는 이야기의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 신을 믿지 않는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 이후 그녀를 위해 신앙심을 가지려고 애쓴다. 1비트짜리 오류를 일으키려 하거나, 라이트시커가 되어 천사강림을 목격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결말은 전혀 다르다. 두 남자 모두 신을 만나는 영적인 체험을 하지만, 타일러는 찰나에 방해받아 영원히 그 순간을 그리워하며 살고 닐은 천사를 만나고도 지옥에 떨어진다. 타일러는 영적인 체험을 하고도 신을 믿지 못하는 반면 닐은 신의 부재 속에서도 진정한 신앙심을 느낀다.


신에 대한 믿음이란 대체 무엇일까? 신을 믿고 싶어 뇌에 '오류'를 일으키려 한 타일러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신앙은 오류가 아닐지도 모른다. '똑바로 보지 않아도 눈길을 끄는 희미한 별처럼', 직접 실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비트짜리 오류]를 읽는 내내 영화 [콘택트]가 생각났다. 타일러와 앨리는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다.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에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을 믿는 사람들을 약간 바보취급하기까지 한다. 앨리는 팔머를 사랑하지만, 그의 신앙은 믿지 않는다. 앨리가 믿는 것은 관측할 수 있는, 해석할 수 있는 외계문명의 존재다. 물론 과학은 믿음의 영역이 아니다. 앨리는 믿음을 가지고 퍼스트 콘택트를 기다리지만 앨리에게 이는 믿음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반면 팔머가 고백하는 초월적 경험이나 신의 존재는 앨리에게 관측 불가능한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둘의 믿음은 정말로 다른가?


증명할 수 없어 신을 믿지 않는다는 앨리에게 팔머는 이렇게 묻는다. "아버지를 향한 당신의 사랑은 증명할 수 있나요?" 앨리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앨리 역시 여느 종교인들처럼 어떤 믿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과학과 종교는 가장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팔머와 앨리는 서로에게 이끌린다. 불가지론자이자 과학자인 앨리는 자신의 믿음을 위해 인생을 바친다. 팔머는 그런 앨리의 믿음을 알아봤기에 앨리를 사랑하고 지지한다. 베가성에 다녀온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는 앨리의 모습은 마치 어린 시절 자신이 겪은 초월적 경험을 고백하는 팔머의 모습과 같다.


앨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굳이 신앙이나 종교와 같은 모습으로 표현할 필요 없이,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믿음은 신에 대한 믿음과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본질적으로는 그런 믿음이 필요하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믿음, 혼자가 아닐 거라는 믿음. 앨리의 삶은 그 자체로 아버지의 유지이자 사랑이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믿음이 우리를 지탱한다. 신의 부재 속에서 우리는 믿을 구석을 찾야 하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스탠 바이 미] 썰물처럼 빠져나간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