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1.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공감이 필요하다는 말은
흔히 누군가가 나의 감정이나 의견에
동조해주길 바랄 때 쓰는 표현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의 공감을 필요로 한다.
반면 반대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럼에도 상대방이 공감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거나
공감이 강제되는 상황이라면
그럴 수 없는 것이 퍽 힘들 수 있다.
어찌어찌 이해까지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와 공감이 누군가에게는 한 끗 차이일 수 있지만
정서적 공감 위에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에게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일 수도 있다.
이런 이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공감이 간절히 필요’하다.
공감을 해야지만 관계를 쌓을 수 있다.
나의 경우도 비슷하다.
친구 사이만 하더라도
같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일지라도
공감이 되는 친구들과 만나는 것이
마음이 편안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찬구들과 멀어진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더 가까워지는 것이 쉽지가 않다.
정이라는 감정이 관계를 계속하게 만든다면
공감은 관계를 밀착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나와는 달리
모든 관계가 편한 사람을 보면
참 부럽다.
특히,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사에서
공감대마저 형성하기 어려울 땐
좋은 관계를 만들기가 더 힘들다.
누군가 어려움이 있을 때, 내 속엔
일을 잘 풀어야 한다는 마음과
그 사람에 공감하려는 마음이 대립한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조언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공감도 아닌
애매모호한 입장으로 그 사람을 대하게 된다.
그 사람에 충분히 공감을 해야지
나의 진솔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요인들이 개입을 하니
더욱더 공감하기가 힘들다.
공감이 간절히 필요하지만 그게 참 힘들다.
그렇다고 일과 사람 중 하나만 선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고민,
사실 고민의 원인 자체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학교 동기 형을 만났고 조금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감형 인간인 너한테는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만
모든 것에 공감할 필요는 없어.
그냥 듣고만 있어도 상황이 나아지는 경우도 있어.
그래서 차분히 듣기만 하는 연습도 필요한 거야”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대화 자체가 해답이 되는 경우가 있으니깐 말이다.
그리고 약간은 반성의 마음도 들었다.
공감이라는 방패로 누군가를 배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공감이 되지는 않는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은 것은 아니었는지.
나라는 사람은 공감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감이 나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
공감이 아니라면 이해를, 이해가 아니라면 수용을 할 수 있는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