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친구의 자동차가 뺑소니를 당한 적이 있다.
나도 그 현장에 있었고 우리는 그 과정을 함께 목격했다.
사이드 미러를 치고 지나간 가해 차량은 비틀거리며 불안한 주행을 보였고,
얼마 못가 인도로 들어와 가로등을 박았다.
친구와 나는 눈앞에 펼쳐진 황당한 상황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멍한 정신을 깨우고 경찰에 우선 신고를 했고 가해 차량의 다음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차량으로 선뜻 다가가기에는 해코지를 당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한참을 반응이 없던 차량에서 예상 밖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운전석에서 한 남성이, 조수석에서는 한 여성이 내렸다.
그러더니 여성이 운전석으로 옮겨 타고 남성은 우리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사고에 대해 합의를 하러 오는 줄 알았지만 그는 우리를 지나쳐 멀리 사라졌고,
잠시 후 다른 남성 두 명과 함께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는 우리에게 사고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차에 남아있는 여성이 운전했는데 술을 마셨고 인사불성이다,
사고는 현금으로 합의하고 경찰은 부르지 말자라는 것이 그의 이야기였다.
우리는 분명 그가 운전석에 내리는 것을 봤으며,
남성 역시도 이미 술에 많이 취해 있었다.
그리고 그가 데려온 다른 남성들은 고분고분 합의하자는 무언의 신호인 듯했다.
하지만 이미 경찰엔 신고를 했고 그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경찰이 도착했다.
그 순간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다.
멈춰있던 가해차량이 사고 현장을 벗어나 도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경찰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경찰차는 즉시 쫓아갔다.
하지만 그 사이 남성 무리는 현장에서 사라졌다.
사고 현장에 남은 경찰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무전기를 통해 도주차량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도 자세한 진술을 위해서 경찰서로 이동했다.
살면서 경찰에 진술을 하기 위해 간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목격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지만,
조사를 진행한 경찰관은 비슷한 질문을 거듭했다.
모든 것을 목격했고 그것이 진실임을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우리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어주면 될 것을...
경찰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오히려 의심한다는 느낌까지도 받았다.
어쨌든 상황에 대한 진술을 마치고 나오니 사고차량을 한 여성분이 도착해있었다.
그녀는 인사불성인 상태로 음주 측정기를 불지 않겠다며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어쩌면 큰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니 괘씸하면서도
그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도망친 남성을 생각하니 측은하기도 했다.
그날의 일은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났다.
HR 담당자로 일을 하면서 종종 조사 아닌 조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주로 사람과 관련된 일에 대해 정황을 파악하는 경우이다.
타인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지만
말과 말 사이에 공백이 발생하거나,
사실이 왜곡되어 믿음이 깨어지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거짓을 말하는 경우가 있으며,
속으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질문을 좁게 해석하여
지엽적인 부분에서만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조차도 의도적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을 더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고,
대답을 확실히 하기 위해 재차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야기에는 사실과 해석이 모호하게 뒤섞여있는 경우가 많고
이 두 가지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위 사건이 떠오르고 당시 경찰에게 진술한 상황이 다르게 보인다.
진술이 진실로 확인되기 위해서는 거듭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
동시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여 진실에 파고들어야 함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회의도 느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진실을 파고드는 프로파일러, 검사, 경찰 등의 직업에 대한 경외심이 든다.
진실을 찾아내는 능력과 과정에 대한 존경과 동시에,
어떻게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 궁금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