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공주님이에요."
우리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태어나 유년시절 내내, 혹은 더 오랫동안 '공주'로 불려졌다.
본인이 동화책 속에 나오는 공주마냥, 공주풍 옷을 입고 신발도 꼭 공주스러운 것만을 고집했었던 때가 있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만 공주가 아니었구나.'를 깨닫는 동시에 조금씩 자신의 것들을 포기해버렸다. 마치 세상에 공주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무표정한 얼굴로 빠르게 세상에 적응해 나가는 당연한 수순 같은, 어쩌면 약간은 슬픈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은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쉽게 놓기 일쑤였다. 자주 세상과 타협했고 가끔은 그것이 아주 잘 한 선택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무언가를 그만두기라도 하면 끈기 없음을 비난받기도 하고 아주 작은 일이 일어나도 이제는 스스로 나의 탓으로 돌리고, 나의 부족한 면을 찾느라 급급했다.
엄마가 되어서는 더욱 그러했다.
나보다는 나의 공주님, 왕자님이 소중했고 '나 자신'보다 '나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참한 며느리, 원더우먼 아내, 최고 엄마, 착한 딸의 역할에 몰입해왔다.
마치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 위에 서있는 것처럼, 꼭 해내야 하는 숙명처럼 말이다.
그래도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일들이고 소소한 성취감에 취하기도 하고 '그래, 이게 행복이지.' 느낄 때도 있었다. 주위와 비교, 더 나아가 누군지도 모를 어느 누군가들과 비교하며 안도하기도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인생이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 자신은 어디 있는 거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햇살 좋은 어느 날, 특별하지도 않은 어느 날, 문득 저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왠지 모르게 허무하고 기운이 빠졌고 때로는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이런 모습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말이 있다.
"너만 힘드니? 나도 힘들다."
"힘들지만 이겨내자."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그런 말들을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닌데 괜스레 더 우울감에 빠져든다.
"맞다. 나는 공주였다. "
잊지 말자. 기억해내자.
나의 손짓 발짓 하나에도 물개 박수를 받았던 우리다. 우리는 우아하고 고귀한,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한 "공주"였음을 말이다.
누군가에게 위로만을 바라며 나의 것을 쉽게 포기하는 바보 같고 속 천불 나는 캐릭터가 아니다.
천방지축 모험을 좋아하고 말괄량이였던 어린 시절에도 지금처럼 바보 같이 살지는 않았다. 하고 싶었던 일을 고집 있게 주장했었고 성장통을 겪으면서도 씩씩하게 이렇게 자라왔다.
어쩌다 이렇게 쉽게 잊어버린 것일까.
'나' 다움을 말이다.
이젠 어떤 게 나다운 건지... 도 모르겠다.
이제 잊혔던 고귀함과 우아함, 당당함과 호기심 가득한 미소를 꺼내보자.
우리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마법사가 아니라 주변 환경은 내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가장 어려울지도 모르는 일을 해낼 수 있다. 바로 마음먹기, 생각하기다.
'나'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시작하느냐, 마느냐는 지금 나에게 달려있다.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꿈을 꿈꾸었다면, 이제는 백마 탄 멋진 '진정한 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미치도록 변화를 꿈꾼다면, 조금 더 나은 '내 모습'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내 마음, 내 생각부터 바꿔보자. 우리가 얼마나 멋진 사람이었는지 떠올려보자.
변화에 의지가 생겼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하냐고?
무엇을 해야 하냐고?
지금부터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가 보자.
나 자신이 공주로 불려졌던 시절을 떠올려봐요.
얼마나 예쁘고 당당했었는지 어린 시절의 사진을 찾아보거나 어린 시절 꿈을 떠올려요.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생각해봐요.
분명 미소가 지어질 겁니다.
혹, 오글오글하는 이불 킥 기억이 떠오른다고 해도 괜찮아요.
예전의 나, 지금의 나, 앞으로의 나,
그 어떤 모습의 내 모습도 모두 사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