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골드키위=인절미
집집마다 사연 없는 집은 없겠지만,
어린 눈으로 보아도 우리 집이 평범하지 않다는 건 여섯 살 무렵부터 알고 있었다.
부모님의 다툼은 잦았고, 원인은 늘 돈이었다.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우리 집의 공기는 흐렸다 개었다를 반복했지만,
대개는 흐린 날이 더 많았다.
나는 예민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걸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도 일찍 배웠다.
그래서 부모님 앞에서는 그저 수더분한, 착한 딸로 지냈다.
그러던 나에게도 사춘기가 왔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친구 하나가 간식으로 골드키위를 싸 왔다.
그 시절 골드키위는 신문물에 가까웠다.
친구가 나눠 준 한 조각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그린키위처럼 시지 않았고,
달콤함 속에 산미가 살짝 섞여 있었다.
호르몬이 날뛰던 사춘기 소녀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을 법한 맛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엄마가 집을 비운 상태였다.
살림은 온전히 아빠 몫이었다.
며칠 뒤,
장에 나간다는 아빠의 등 뒤로 말했다.
“아빠, 나 골드키위 사다 줘.”
신문물을 맛본 경험에 대해 열변을 쏟아냈다.
한참을 듣고서 아빠는 알겠다며 집을 나섰고,
나는 엄마를 기다릴 때보다 더 설레는 마음으로
골드키위를 기다렸다.
삼십 분쯤 지나 아빠가 돌아왔다.
손에 든 검은 봉지를 보자마자 달려가 뒤졌지만,
그 어디에도 골드키위는 없었다.
“왜 없어?”
아빠는 시장에 팔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빠와 다시 간 시장에서 노란빛이 도는 키위를 보고 말았다. 골드키위였다.
“아빠, 저게 골드키위야.”
팔을 붙잡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지만,
아빠는 키위를 힐끗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거 조막만 한 거 하나에 삼천 원이여.
저런 걸 어떻게 사 먹냐.”
그 말에,
마음이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그날 이후로
아빠에게 먹고 싶은 걸 사다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용돈을 달라고 했다.
시장에 갈 때마다 골드키위가 보이면
괜히 죄 없는 골드키위를 노려보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에게서 왕따를 당했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초저녁이면
아빠는 내 방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말없이 인절미 한 팩을 책상 모퉁이에 올려두고 나갔다.
어떤 날은 인절미,
어떤 날은 꿀떡이나 쑥떡.
떡들은 돌아가며
널브러진 문제집 틈 사이에 앉아 있었다.
두어 개 집어 먹은 날도 있었고,
랩조차 뜯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아빠는
“왜 안 먹냐” 하고 짧게 묻고는,
대답을 듣지 않은 채 방을 나갔다.
아마도 아빠가 건넨 그 한 팩의 떡은,
또래와 다른 선택을 한 딸에 대한 걱정과,
인생의 한 고비를 맞이한 딸에 대한 응원을 담아 낸 한 팩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안다.
그 시절 내가 정말로 원했던 건
골드키위가 아니었다는 걸.
나도 그 자리에 서 있고 싶었다.
신문물을 먼저 맛본 사람,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나눠 줄 수 있는 사람.
허나 그렇지 못한 현실이
자존심을 아프게 했었다.
그래서
가성비를 따지며 골드키위를 사 주지 않던 아빠가 미웠다.
골드키위를 사 먹이는 집의 부모들과 비교하며,
내 아빠는 자식을 덜 사랑한다고
혼자서 단정 지어 버렸다.
지금도 그때의 서운함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자식을 향한 세상 모든 부모의 사랑이
같은 온도일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자식의 등 뒤에서
말없이 건네는 인절미 한 팩 역시
사랑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