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으시는 주일 저녁, 내어주시는 음식 대신 찻잔을 두고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연희동 골목 가게들의 불이 하나하나 꺼져가는 일요일 저녁. 엄마식탁의 주황불빛이 켜지며 창밖 어둔 골목을 물들인다. 항상 주방에서 요리하고 계셔 대화하기 쉽지 않은 정희전 사장님께, 제비살롱을 제안드렸다. 엄마식탁에서 요리를 맡고 계신 사장님은 누가 내 얘기를 들으러 오겠냐고 하셨다.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있을 거라는 말에 이렇게 답하셨다. “좋아요. 해볼게요. 요리하는 사람이니 요리이야기를 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제비의 일상여행에서 음식을 맡게 된 이야기를 해드리면 되는거죠?” 그리고는 쉬는 날 시간을 내 가게 문을 열고, 오랜만에 아끼시는 찻잔과 따뜻한 차를 끓여 정성스레 자리를 열어주셨다. 도시에서 제비의 삶을 일구어나가고 있는 젊은 제비들은 비건요리를 하시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자. 함께 나눠먹을 비건 다과를 챙겨 모였다. 주황불빛을 은은히 내뿜는 엄마식탁에서 함께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엄식(엄마식탁)의 엄을 맡고있는 정희전이라며 본인을 소개하신 사장님은 조곤조곤 요리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하셨다.
제비: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비건옵션이 없으면 외식할 때 어려움을 겪곤 해요. 연희동 엄마식탁에서는 늘 따뜻하고 든든한 밥을 먹을 수 있어 감사했어요. 어떻게 비건 메뉴를 만들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엄: 단골손님이 카레를 잘 드셨는데, 늘 고기만 남기고 가셨어요. 어느 날, 그 손님이 “고기가 잘 넘어가지 않아서 그런 거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다음부턴 고기를 빼주실 수 있냐고 요청하셨어요. 원하시는 대로 해드렸지만 제 스스로 완성된 음식이 아닌데 같은 금액을 결제하는 게 걸리고. 만족도가 떨어지더라고요. 그러다 다른 손님이 우엉 덮밥에 고기를 빼달라고 하셨어요. 그 손님들은 맛있다고 드시고 가셨는데 전 괜히 찔리고 불편했어요. 비건 분들은 멸치나 새우 육수, 멸치볶음, 호박스프 등 못먹는 것들이 계속 생기니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손님들께 괜찮은지 여쭤보니 조금 소외되는 느낌이 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예 정당한 돈을 받고 제대로 된 비건 음식을 완성해서 내드리고 싶어 비건메뉴를 만들게 됐습니다.
제비: 원래는 비건식당이 아니었는데 완전 비건으로 메뉴를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아요.
엄: 처음엔 고기만 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비건이 복잡했어요. 대체할 것들을 찾으며 메뉴를 개발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채식한끼’에서 외국 손님들이 비건 식당을 찾는데 이 식당을 넣어도 되냐고 연락이 왔어요. 그때 채식한끼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대체할 수 있는 비건 상품들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렇게 비건 소스를 만들게 됐고요. 비건 논비건이 섞이는 실수가 없게 하려고 기본 소스는 다 비건으로 통일했어요. 논비건 분들은 비건음식도 드실 수 있으니까요. 국도 멸치 육수 대신 채수로 끓이고 원래 있던 메뉴를 비건으로 바꿔서 단백질을 위해 콩을 넣고 식감을 위해 표고버섯이나 유부를 넣으며 옵션을 만들었어요.
제비: 맨 처음 개발하신 비건 메뉴는 무엇인가요? 언제부터 비건옵션을 만들기 시작하셨는지도 궁금해요.
엄: 비건 옵션이 생긴지는 1년이 조금 넘었어요. 생채비빔밥 같은 건 원래 있던 메뉴를 바꾸었고 얼큰 국밥은 겨울에 뜨뜻한 국물 넣은 국밥 하나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비건 손님들에게 많이 물어보며 개발했어요. 서점에 나가서 비건 레시피 책을 찾아봤는데 책이 많지도 않고 거의 샐러드나 구운 야채더라고요. 제 모토인 ‘든든한 한 끼’가 될만한 메뉴는 안 보였어요. 오시는 분들이 ‘제로비건’을 많이 말씀해주셨는데 거긴 한식이더라고요. 저도 도전하는 마음으로 얼큰한 걸 해보려고 고기국물 대신 들깨국물로 레시피를 만들었어요. 비건 분들게 시식해달라 했는데 다들 괜찮다고 하셨는데 한분이 비건 식당에는 늘 들깨가 나온다고 말씀하셨어요. 남들 다 쓰는 건 안하고 싶었고, 그제서야 왜 고기를 안 드시는 분들에게 고기 맛을 내주려고 했나 싶어서 그 레시피를 엎었어요. 사찰 음식 책을 뒤지며 다시 공부를 하고 레시피를 접목해서 지금의 깔끔한 얼큰 국밥을 만들었어요. 반찬 중에서 멸치볶음도 못드시니 고민하다 유부를 떠올렸어요. 유부가 튀긴 음식이다보니 기름기를 다 빼줘야 하는 손이 가는 음식이긴 하지만 식감이 괜찮아서 반찬을 만들고 유부불백 덮밥까지 만들게 됐어요.
제비: 비건메뉴를 먹으러 오시는 분들은 얼마나 되나요?
엄: 요새는 정말 많이 보여요. 3-40%는 비건음식을 드시러 오세요. 주로 비건 분들은 비건메뉴 먹으러 그룹지어서 저녁이나 주말에 많이 찾아오세요. 메뉴판을 드렸을 때 ‘여기 채식메뉴도 있네?’하며 시켜 드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엄: 저는 궁금한 게, 시원씨는 왜 비건을 하게 되셨어요?
제비(시원): 사실 저는 원래 고기 없으면 밥을 안먹는 육식파였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선배가 공장식 축산에 대해 발표하며 잔혹한 축산 환경에 대한 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충격받았지만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1년을 더 먹었어요. 그러다 2학년 때, 기후위기 공부를 하며 과도한 고기 소비로 공장식 축산업이 생겼고, 축산업이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것까지 알고나니 더이상 고기를 먹을 명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페스코 채식을 시작한지는 5년이 됐고, 대학에선 비건 옵션 식당들도 꽤 있고 주변에 채식하는 친구들도 많아서 더 본격적으로 비건지향하고 있어요. 지금 저한텐 기후위기가 제일 큰 이슈예요. 불안과 우울을 야기하는 너무 시급한 문제인데, 개인으로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실천은 비건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비건까진 못해도 일상에서 조금씩이라도 육류 소비를 줄이고 비건 친화적인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그래서 예전엔 혼자 열심히 했는데 요즘은 일부러 더 비건이라 이유를 알리려 하고 있어요.
엄: 왜 비건하시냐고 물어본 게, 저처럼 고기 먹는 사람도 기후위기에 관심은 있거든요. 그래서 생각한 게 비건을 홍보할 때, 너무 풀세팅된 걸 보여주면 관심 있어도 ‘난 저 정도까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비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두부부침이나 콩나물무침처럼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비건을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누군가 나한테 한우세트 주면 부담스럽지만, 두부 한 번 부쳐주는 정성은 좋거든요. 부담없는 선물로 비건반찬을 해서 이거 비건이라며 나눠줘도 좋을 것 같아요. 너무 거창하게 시작하려면 처음 동참할 때 어려우니까요.
제비: 엄마식탁처럼 비건과 논비건이 같이 먹을 수 있도록 옵션이 있는 식당이 많아지면 좀 더 편할 것 같아요. 외식할 때 비건 옵션 없을 때 정말 소외감이 드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비건으로 요청드릴 때도 죄송하고 눈치보이는 순간이 많은데 사장님이 그런 요청을 듣고 공부해가며 비건 메뉴를 만들어주신 마음에 감동 받았어요.
엄: 저는 그냥 재밌었어요. 소스에 o.o8% 동물성성분 들어있고 이런 것들 때문에 조금 어렵긴 했는데요. 지루할 때였는데 비건 메뉴 개발하며 찾아가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저는 음식을 나눠주는 기쁨이 너무 좋아요. 예쁘게 플레이팅 하는 것도 좋아해서 매번 다른 그릇에 예쁘게 드리고요. 몸은 힘들지만 칼질도 재밌고 손님들에게 대접했을 때 드시고 표정이 좋으면 그걸로 행복해요.
제비: 비건 옵션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런 마음이셔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일반식당에서 비건으로 먹고 싶을 때 어떻게 말씀드려야 기분 나쁘지 않게 요청드릴 수 있을지 궁금해요. 요리하는 분 입장에서 팁을 주실 수 있을까요?
엄: 체인점에선 이미 만들어진 소스에 들어가는 걸 못빼니까 100% 비건으로는 어려울 거예요. 식당 직원이 비건이 뭔지 모를 때는 ‘저 사람은 뭐야’하는 반응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요새는 비건에 대한 인식이 조금 생겨서 고기를 빼달라고 요청했을 때 오케이 하시면 다른 걸 좀 더 넣어달라고 해도 요리해줄 수 있을 거예요. 직접 레시피를 조절해서 요리해줄 수 있는 작은 자영업 식당들에 가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제비: 엄마식탁에서 밥먹고 있는데 경복쌀상회 사장님이 쌀 배달하러 오신 걸 봤어요. 괜히 더 반갑고 맛있게 느껴지더라고요. 연희동에서 식당을 운영해서 더 좋은 점이나 맺고 계시는 관계들이 있을까요?
엄: 네, 쌀은 경복쌀상회에서 빵은 폴앤폴리나에서 사고요. 고기도 사거리 정육점 거 쓰고 다 주변 가게들에서 구매해요. 사실 로컬 푸드인 거죠. 저희는 식당을 해서 한번에 재료를 많이씩 대량으로 사잖아요. 그래서 콩나물을 한 박스 사면 콩나물 밥처럼 간단한 요리를 한가득 해서 주변에 있는 동네 가게마다 조금씩 나눠드려요. 경복쌀상회나 폴앤폴리나, 정육점처럼 매번 장보는 가게들 문에 음식을 걸어드리고 와요. 그러면 재밌는 게 다음에 장보러 갈 때,저번에 잘 먹었다하시면서 깍아주시곤 해요. 정육점 사장은 재료 사러 가면 국거리 할 고기 조금 더 주시고, 경복쌀상회 사장님은 쌀 배달하러 오셔서 깍아주셔요. 그런 게 참 좋아요. 사실 서로서로 다 연결되어 있어요.
제비: 연희동에 처음오시는 분들은 여행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연희동은 아직 옜동네 느낌과 골목들이 고스란히 살아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엄: 맞아요. 요즘처럼 놀러오는 사람들 많아지고 새로운 가게들이 생기는 건 좋은데, 딱 이렇게만 변했으면 좋겠어요. 연희동은 골목골목 자기 특색 있는 가게들이 많잖아요. 만약 체인점이 들어오더라도 연희동스럽게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분위기나 매력이 지켜지는 한에서요.
제비: 마지막으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나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엄: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게 있어요. 단골 손님분이 비건 술안주 하나만 만들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비건들은 술안주로 먹을 게 감자튀김 밖에 없다고요. 사실 만들어보고 싶어서 생각하는 건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아직 못해봤어요.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요즘 남은 음식을 싸가시는 분들이 많은데 ‘먼저 맛있는 부분을 덜어서 싸고’ 드셨으면 좋겠어요. 옛날에는 문구가 ‘남은 음식 싸가세요’였는데 저는 잘못된 얘기라고 생각해요. 침 닿는 순간 더 잘 상하고 사람이 먹다보면 맛있는 걸 먼저 먹게 되거든요. 그래서 양이 적으신 분들은 먹을 만큼만 덜어내고 먼저 싸놓고 드셔야 싸간 음식도 맛있게 드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제로웨이스트와도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엄마식탁 제비살롱은 풍성한 이야기들과 함께 따뜻하게 마무리 되었다. 요리에 관심이 많고 비건을 실천하는 제비들이 함께 해 더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연희동 곳곳에서 사온 비건 다과와 정희전 사장님이 내어주신 차를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소외 당하는 사람없이 모두가 맛있고 든든한 한끼를 먹을 수 있도록 애써주신 마음에 감사했다. 제비살롱이 끝나고 며칠 뒤, 엄마식탁의 엄을 찾았다. 제비살롱에 참여했던 다른 제비들이 찾아와 밥을 먹고 갔다는 소식을 전하시며 말을 건네셨다. “이야기모임은 처음 해봤는데 비건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잘 들어주셔서 너무 재밌었“다는 소감을 나눠주셨다. 다음에 다시 찾았을 때는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단호박스프에 유제품이 들어 비건분들은 못 드시니 순두부를 준비했다며 비건들을 위한 에피타이저를 내주셨다. 반찬과 밥에 에피타이저까지 비건 옵션을 만들고나니 드디어 숙제를 끝내고 완성한 기분이라며 활짝 웃으셨다. 비건 안주도 고민 중이니 나중에 비건친구분들 모시고 시식회 한번 하자는 말씀까지! 그 변화가 꼭 선물처럼 다가와서 마음이 순두부처럼 따뜻해졌다. 새로운 연결과 변화의 기쁨를 선물해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