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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진 5시간전

아주 잠깐이지만 겹쳤던 시간선을

Look, the moon, 2019 Matthew Wong

“나는, 이제는 네가 남들하고 같은 시간을 살았으면 좋겠어.” 호수 앞 벤치에 앉아 네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너와 나는 남이 되었다. 여태껏 만난 다른 여자와 다를 것 없이, 똑같이 내 행복을 바랐던 네가 떠났다. 그곳이 런던인지 식사동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나는 너를 따라가지 않았다. 모두와 같은 교복을 입어본 적 없는 나는 늘 이상한 유학생이었겠다. 이상한 이방인에게 친절한 곳은 편의점 알바생뿐이었고, 고장 난 시계를 찬 나는 그마저도 찾지 못하고 계속 길을 잃을 뿐이었다. 참 신기하게도 강산 따라 무작정 걷다 보니 그래도 어딘가 도착해 있더라. 잘 모르겠지만, 평범하게 남들과 비슷한 시간대를 살고 있는 듯했다. 비슷하게 소망을 적었고, 비슷하게 죽음을 꿈꿨고, 비슷하게 사랑을 읽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새벽을 건너뛰어 간신히 평온한 아침을 맞이했던 날이었다. 모든 것이 서글프게도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처음으로 시간이 이대로 멈춰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던, 무척이나 포근했던 평온함이었다. 나 진짜 열심히 했는데, 그 모든 열심을 가증스럽게 만들 만큼 너무 보잘것없었다. 십 년간 내가 그토록 핥고 싶었던 평범함이란 것은. 그래서 그랬나, 평범한 하루는 또 그만큼 쉽게 녹아버렸다. 괜찮았다. 남들과 같은 시간을 영원히 살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어쩌면 아주 절실한 사실쯤은 진작 손목에 새겨두었기에.


또 불행을 들킨 줄도 모르고 너와 발맞춰 걸었던 날 밤이었다.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누구보다 네가 제일 먼저 알고 있었다. 참 자주 걸었던 우리는 그날도 호수 근처를 걷다가 벤치에 앉았고, 너는 불쑥 런던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 했다. 한참을 아무 말 않다가 네가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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