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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은 흐려질수록 더 선명해진다

윌리엄 터너 <모던 로마>, <반트롬프>

by Summer
흐려져 가는 것들이 이상하게도 더 선명하게 나를 붙잡았다. 가끔은 잊는 게 두렵고, 가끔은 기억하는 것이 더 두렵다.


"그때 추억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

누구나 한 번쯤은 바라게 된다. 마치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어떤 풍경처럼. 어떤 장소를 떠난다는 건, 그곳의 시간을 멈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곳은 변해갈지라도 떠난 사람의 기억은 마지막 장면에 고정된 채 남기에.


며칠 전 만난 이민 1새대분께서 "내가 그리워하는 한국은 아직도 70년대야"라고 했다. 묘하게 공감됐다. 정작 그립게 만드는 건 변화한 지금이 아니라, 누구와 걷고, 무엇을 먹고, 어떤 공기를 들이마셨는가 같은 감각들이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난 후론 그리움은 때때로 향수병처럼 불쑥 찾아왔다. 어떤 날은 전화기 너머로 울컥했고, 어떤 밤은 혼잣말로 풀리지 않는 감정을 쏟아놓기도 했다.


그건 결국, '잊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은 언제나 우리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붙잡고 싶은 장면일수록 먼저 흐려졌다. 꿈처럼 서서히 옅어지자 그 사실이 이상하게 무서웠다. 사라지기엔 너무 소중했던 순간들인데. 왜 이렇게 금방 희미해지는 걸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흐려지는 기억이 무섭다지만, 막상 떠오르면 다시 몽글하고 따뜻했다는 걸. 그 ‘따뜻한 흐릿함’을 건드린 작품이 있었다. 내 경험을 넘어 기억의 본질을 말해주던 그림.




바로 터너의 <모던 로마: 캠파냐의 콜로세움>(1839).

<모던 로마: 캠피냐의 콜로세움>


캔버스를 마주한 순간, 형태보다 먼저 다가온 건 풍경도, 이야기도 아니었다. '분위기'였다. 안개와 빛이 경계 없이 번지는 장면. 건물은 흐릿했지만, 이상하게 그 흐릿함이 더 선명했다.


알고 보니 터너는 로마에서 이 그림을 그린 게 아니었다. 10년 전 여행의 감정과 잔상만을 가지고, 상상으로 다시 만든 로마였다. 그래서 실제와는 다르지만, 이상하게 더 ‘로마’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터너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억이란 '형태'가 아니라 '분위기'로 남는다는 것을. 우리가 어떤 도시를 떠올릴 때 정확한 위치보다 그 순간의 온도, 공기, 눅눅한 밤의 냄새를 먼저 떠올리는 것처럼. 기억은 정보가 아니라 잔향을 남기는 법이니까.


놀랍게도 이 작품은 사진 기술이 등장하던 1839년에 만들어졌다. 예술이 "정확하게 기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흔들리던 시기, 터너는 혼자만의 방향을 선택했다.


“나는 본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느낀 것을 빛으로 표현한다.”

윌리엄 터너

기억의 형태를 버리고, 감정의 빛을 붙든 것이다. 영국은 그런 그를 사랑했다. 20파운드 지폐에도 등장하고, “스페인엔 피카소, 네덜란드엔 고흐, 영국엔 터너”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전시장을 걷다 보니 또 다른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흰 모자 장교가 등장하는 '반 트롬프'. 유배에서 돌아와 다시 부름을 받는 순간— 밑바닥에서 다시 불려나온 사람만이 가진 긴장과 희열이 흐릿한 빛 속에 담겨 있었다.

터너가 빛을 다루는 방식은 여기서도 두드러진다. 구체적인 형태보다 공기와 빛의 결을 먼저 그리는 그의 기법은, 훗날 인상주의 화가들이 보여준 감각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실제 모네는 터너에게 영향을 받았다. 프로이센 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갔을 때, 그는 터너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고 이 경험이 인상주의로의 전환을 결정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터너를 “인상주의보다 50년 앞선 화가”라고 부른다.


무엇을 그렸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느끼게 하는지를 먼저 그린 사람.


그 정신은 그의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어느 폭풍우 치던 날, 터너는 선실로 피하지 않고 스스로를 뱃머리에 묶어달라고 했다. 50세가 넘은 나이에, 4시간 동안 폭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빛과 공기를 ‘직접’ 경험한 것이다. 그 경험은 곧 그의 그림이 되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회반죽 같다”며 혹평했지만 지금은 천재의 작품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그의 대작 <전함 뛔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영국에게 거북선 같은 존재였던 전함이 시대가 바뀌어 증기기관에 끌려가며 시대의 퇴장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빨갛게 지는 노을 속에서 한 시대가 조용히 저물고 있었다. 이 그림은 007 <스카이폴>에서도 ‘시대의 전환’을 상징하는 장면으로도 등장했다.


그림 앞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얼굴과 목소리, 오래된 온기들이 빛 속에서 다시 미세하게 떠올랐다. 기억은 없어지지 않고 그저 결을 바꿔 남아 있었다. 선명함이 아니라 흐림으로, 형태가 아니라 냄새와 온도로.


시간이 지나면 장면은 흐려지지만 그날의 공기와 습도, 피부에 닿던 온도 같은 것들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았다. 그런데도 나는 오랫동안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흐려지지 않도록 선을 따라가듯 기억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붙잡는다고 선명해지는 것도 아니었고 놓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기억은 애초에 그런 방식으로 남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흐릿함 속에서 또렷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함께 웃던 날의 습한 저녁 공기, 누군가의 손끝이 스쳐 지나갈 때의 온도, 어딘가 멀리서 들리던 작은 소리들.


어쩌면 “그때처럼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은 결국 공간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향한 그리움이 아닐까.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은 형태 없이 남아 빛처럼 번지고, 공기처럼 스며들고, 내 안에서 아주 낮은 온도로 계속 살아 있었다.


그리고 터너의 빛 앞에서 나는 그 마음을 예전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 더 용기 있게 느낄 수 있었다.



**연말이네요! 벌써 한해가 끝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정말 많은 일들이 있던 2025년을 보냈던 것 같아요. 모두들 따뜻한 11월 말 보내시기 바라며, 12월 달에 또 다른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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