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다 왈칵 울어버린 친구, "네가 너무 그리웠어"

'누구 엄마'가 되어버린 너에게, 찬란했던 열아홉의 이름을 돌려줄게

by 신세연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유독 엉뚱한 곳에서 찰떡같이 죽이 맞던 인연이 있다. 같은 중학교를 나왔지만 단 한 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 없는 친구. 그런데도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친했다. 고등학생이 되어 서로 다른 학교의 교복을 입게 된 후에도 우리의 우정은 견고했다.


당시 우리의 온 우주는 '스타크래프트'와 '프로게이머'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우리는 주말이면 각자의 교복을 챙겨 입고 코엑스에서 만나 e스포츠 공개방송을 보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일생일대의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내가 사용하던 통신사 KTF에서 주최하는 '비기(Bigi) 캠프' 이벤트에 떡하니 당첨이 되어버린 것이다.


평범한 캠프가 아니었다. 2박 3일인지, 3박 4일인지 당최 기간도 가물가물하지만, 무려 KTF 소속 유명 프로게이머들과 함께 바나나보트도 타고 스타크래프트도 하는 꿈같은 캠프였다. 당첨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내 친구를 떠올렸다. 얘랑 같이 가면 완벽했다.


문제는 단 하나, 캠프 출발일이 정확히 '수능 D-100일'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고3이 되기 전까지 공부와는 담을 쌓고 매일 소설책만 파고들던 애였다. 고3 때 만난 은인 같은 담임 선생님 덕분에 뒤늦게 펜을 잡긴 했지만, 그래도 프로게이머들과의 캠프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 고3 여자애 둘이, 그것도 수능 100일을 앞두고 게임 캠프를 가겠다니. 당연히 집안이 발칵 뒤집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찬란하게 철이 없던 열아홉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기어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냈고, 내 친구 역시 우리 엄마의 화려한 언변 찬스(?)를 빌려 간신히 친구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냈다. 캠프에 가는 내내 "가서 틈틈이 풀겠다"며 캐리어 한구석에 문제집을 구겨 넣는 양심적인 퍼포먼스도 잊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그 문제집은 단 한 페이지도 펼쳐지지 않았다.) 우리는 수능 100일의 압박감 따위는 까맣게 잊은 채, 강원도에서 그야말로 미친 듯이 놀았다. 평생을 우려먹어도 질리지 않을, 우리 인생에서 가장 발칙하고 통쾌했던 일탈이었다.


우리의 끈끈한 인연은 이십 대까지 이어졌다. 내가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던 시절, 평생교육원 교수님이 일 잘하는 사람을 찾으시기에 주저 없이 이 친구를 추천했다. 다른 대학을 나왔음에도 우리는 같은 캠퍼스로 출퇴근을 하며 20대의 치열한 페이지를 함께 넘겼다.


하지만 친구가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면서 우리의 궤적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원래 살던 목동에 머물렀지만, 친구는 결혼과 함께 동네를 떠났다. 사는 세계가 달라지니 자연스레 연락은 뜸해졌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동네에서 만났다. 반가운 마음으로 이런저런 안부를 묻던 중, 친구가 돌연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나, 네가 너무 그리웠어."


순간 내 가슴속으로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훅 파고들었다. 나도 모르게 친구를 따라 눈물이 터져버렸다. 왜 울었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른 나이에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친구는 그 전쟁 같은 시간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세상은 그녀에게 그 두 가지 역할만을 부여했고, 그렇게 불리기를 강요했다. 수능 100일 전에도 캐리어를 끌고 놀러 갔던 그 겁 없고 반짝이던 열아홉의 소녀는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버거운 책임감에 짓눌린 지친 어른만이 내 앞에 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그저 예전의 그 철없던 시절이, 온전히 '나'로 존재했던 그 시간들이 미치도록 그리웠던 것이다.


친구의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내 마음은 무참히 허물어졌다. 하지만 결혼도, 육아도 겪어보지 않은 미혼의 내가 그 삶의 무게를 어찌 감히 재단하고 위로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저 "우리 앞으로 자주 보자"는 무력한 약속뿐이었다.


물론 그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나도, 친구도 각자의 팍팍한 삶을 굴려 가느라 바빴으니까. 그래도 간혹 SNS를 통해 들려오는 친구의 소식을 볼 때면,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모습에 묘한 안도감이 든다.


전쟁 같던 육아의 터널도 어느덧 끝이 보이는 듯하다. 그러니 이제는 내 친구가 아내와 엄마라는 무거운 꼬리표를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코엑스 앞을 누비며 프로게이머들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던, 문제집을 내팽개치고 바다에 뛰어들던 그 눈부신 아이의 얼굴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다.


생각해 보면, 그날 친구가 내 앞에서 왈칵 울음을 터뜨렸던 건 단순히 내가 반가워서만은 아니었을 거다. 내 눈동자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겁 없고 반짝이던 자신의 열아홉이 몹시도 그리워서이지 않았을까 싶다.


누군가의 찬란했던 한 시절을 잊지 않고 온전히 기억해 주는 일. 어쩌면 그게 서로 다른 궤도를 도는 오래된 친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하고 묵직한 위로가 아닐까 싶다. 세상이 부여한 역할들에 지쳐 진짜 내 모습을 잃어버릴 때쯤, 내가 언제든 그 시절의 서랍을 열어 친구의 열아홉을 꺼내주어야겠다.


그러니 보고 싶은 친구야. 이제는 문제집이라는 핑계조차 필요 없이, 완벽하게 철없는 일탈을 다시 한번 해보자. 그때는 누구 아내, 누구 엄마가 아닌 오직 내 친구, 너의 진짜 이름 세 글자로만 아주 크게 불러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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