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고를 건넨다

나를 작가로 살게 한, 나의 첫 번째 독자

by 신세연

천리안, 나우누리 같은 값비싼 PC 통신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무렵이었다. 동네 골목마다 매캐한 담배 냄새와 컵라면 냄새가 섞인 PC방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폭발적으로 인터넷 보급이 이루어지던 때. 모니터 너머에 거대하고 새로운 세계가 막 열리던 그 시기에 나는 한 건전한 취미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내 나이 고작 열다섯,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그 시절의 인터넷은 지금처럼 차갑고 날이 서 있지 않았다. 익명의 아이디 뒤에도 사람의 온기가 있었고, 화면 너머의 얼굴을 모르는 이들과도 쉽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묘한 낭만이 존재했다. 우리는 오직 취미가 같다는 이유 하나로 빠르게 가까워졌다. 사는 동네도, 다니는 학교도 완벽하게 달랐지만 주말이면 기꺼이 버스와 지하철을 몇 번씩 갈아타고 만나 '정모'를 했다.


약속 장소에 모여 실없는 농담을 나누고,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며 깔깔거리던 열다섯 살 꼬맹이들의 인연. 그 가벼운 시작이 이토록 길고 질긴 인연으로 이어질 줄은 당시엔 아무도 몰랐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는 신기하리만치 깊고 단단해졌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나는 불쑥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돌이켜보면 참 무모하고 겁 없는 도발이었다. 나는 글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었다. 문예창작과나 국문과 같은 관련 전공 근처에도 가본 적 없고, 그 흔한 글쓰기 학원이나 아카데미 한번 다녀본 적 없는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오직 읽어 치운 책들과 내 머릿속의 잡념들이 전부인 애가 작가가 되겠다니.


겉으로는 다들 "그래, 열심히 해봐"라며 웃어주었다. 하지만 그 친절한 미소 끝에 매달린 서늘한 진심을 모를 만큼 눈치가 없진 않았다.


'네가 해봤자 얼마나 가겠니.'

'그 바닥이 어떤 바닥인데.'


속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싸늘한 의심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천재들도 펜을 꺾고 나가는 곳. 잘 나가봤자 푼돈이나 만진다는 흉흉한 소문들이 파다한 곳. 그게 내가 발을 들이려는 세계의 진짜 모습이었으니까.


실제로 활자를 붙잡고 버티는 삶은 처절했다. 돈이 없었다. 지독한 가난은 낭만을 아주 쉽게 집어삼켰다. 미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칠 때마다 내 재능에 대한 의심도 함께 바닥을 쳤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그냥 하던 글쓰기를 멈추고, 다시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가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나 받으며 살까 싶었다. 글을 버리고 도망치려 하던 그때, 나를 수렁에서 건져 올려준 사람이 바로 열다섯에 만난 그 친구였다.


친구는 책의 무서움과 활자의 무게를 알았다. 엄청난 다독가였고,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복수 전공할 만큼 문학에 깐깐한 기준을 가진 녀석이었다. 그런 친구가 엉성하고 투박한 내 글을 찬찬히 읽고는 말했다.


"네 글, 진짜 좋아. 정말 재밌어. 너 글 진짜 잘 써."


위로를 위한 빈말이 아니었다. 활자를 대하는 친구의 단호한 눈빛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절대로 포기하지 마. 세상이 결국엔 네 글을 알아줄 거야."


그 어떤 권위 있는 평론가의 심사평보다, 그 어떤 베스트셀러 작법서의 가르침보다 강력했다. 가진 것 하나 없고 족보도 없는 쌩초보 지망생에게, 오직 내가 써 내려간 '글' 하나만 보고 던져준 그 단단한 확신.


그 말은 내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콱 박혔다. 그리고 내가 무너질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척추가 되었다. 작가로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 어떤 찬사보다 친구가 건넸던 그날의 맹목적인 응원을 가장 강력한 부적으로 품고 산다.


어디선가 그런 말을 주워들은 적이 있다.

'소설가들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원고의 초고를 가장 먼저 보여준다'고.


그래서 나는 소설을 쓸 때마다 날것 그대로의 초고를 항상 그 친구에게 가장 먼저 보냈다. 맞춤법이 엉망이어도, 앞뒤 문맥이 덜컹거리고 서사가 꼬여있어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내 글의 가장 밑바닥부터 함께해 준 사람이니까. 지금은 소설보다는 드라마나 영상 쪽 대본을 주로 쓰다 보니 예전처럼 초고를 수시로 툭툭 던져주진 못하지만, 여전히 내 글의 영원한 '제1 독자'는 변함없이 그 친구다.


내가 쓴 글로 마침내 밥벌이를 하고 작가로서 자리를 잡았을 때, 세상 누구보다 자기 일처럼 펄쩍 뛰며 기뻐해 준 사람. 그리고 내가 재능을 의심하며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치려 했을 때 유일하게 내 손목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던 사람.


오늘도 모니터 앞에서 활자와 씨름을 하다가 문득 생각한다. 내가 여전히 글을 쓰고, 그 지독하고 축축했던 시간들을 무사히 건너온 건 온전히 그 친구 덕분이라고.


15살, 모니터 너머로 만나 나의 가장 오랜 세계가 되어준 친구.

나보다 내 글을 더 사랑하고 믿어주었던 나의 첫 번째 독자.


나의 든든한 제1 독자가 언제든 읽어줄 준비를 하고 있는 한, 나는 앞으로도 겁 없이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어떤 다정함은 평생의 응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