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싶은데, 왜 자꾸 급해질까?

불안을 성실함으로 착각하며 달리는 사람들

by 토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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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거울 속 내 얼굴을 보았다.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고 있거나,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다음 일정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모습.

'잘 살고 싶다'는 소망은 어느덧 '빨리 해내야 한다'는 압박으로 변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처리해야 할 일들을 세고,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업무 메일을 확인하며,

점심시간에는 자기계발서를 펼쳐 든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도 유튜브로 '생산적인 루틴' 영상을 보다가, 문득 깨닫는다.

나는 오늘 하루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더 나은 삶을 위해 시작한 일들인데,

왜 나는 여유를 얻기는커녕 갈수록 조급함이라는 족쇄에 묶이고 있는 걸까.


우리가 자꾸 급해지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몇 가지 함정이 숨어 있다.


가장 먼저, 우리는 결과만 있고 과정은 소거된 세상에 살고 있다.

SNS를 켜면 타인이 이뤄낸 찬란한 결과물들이 1초 단위로 쏟아진다.

누군가의 성공, 누군가의 집, 누군가의 완벽한 휴가.

그들이 그 결과를 얻기 위해 보낸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은 생략된 채,

오로지 화려한 단면만 전시된다.


문제는 우리가 그 편집된 결과물을 나의 날것 그대로의 과정과 비교한다는 점이다.

남들은 벌써 저만치 가 있는데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착각.

그 비교의 덫이 우리를 등 떠민다.

속도감에 익숙해진 우리는 나의 느리고 투박한 과정이 잘못된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더 빨리, 더 많이 하려고 발버둥친다.


또 하나, 우리는 '불안'을 '성실함'으로 착각한다.

가만히 있으면 도태될 것 같고,

무언가 끊임없이 입력하고 출력해야만 생산적인 사람이라는 안도감을 얻는다.


밤 11시, 몸은 이미 녹초가 되었는데도 자격증 강의를 틀어놓고 앉아 있다.

눈은 화면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오늘도 뭔가 했다'는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실함이라기보다 불안에 쫓기는 것에 가깝다.

조급함은 내면의 빈자리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만들어낸 가짜 배고픔이다.

우리는 마음의 공허를 '바쁨'으로 채우려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잘 사는 것'의 기준을 늘 미래의 어느 지점에 둔다.

"이 프로젝트만 끝나면", "돈을 얼마만큼 모으면", "아이들이 다 크면"

그때 비로소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행복을 담보 잡힌 채 현재를 통과해야 할 '장애물'로 여기니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빨리 이 구간을 지나가야만 내가 원하는 삶이 시작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지나가는 길 그 자체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소홀히 대하며 만드는 미래가 과연 '잘 사는 삶'일 수 있을까.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습관이 반복되면,

결국 우리는 '언젠가'라는 시점에 도달했을 때도 또다시 다음 '언젠가'를 기다리게 된다.


급해진 마음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

시야가 좁아지면 내 옆에 앉은 사람의 표정을 놓치고,

창밖으로 스치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며,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결국 '잘 살고 싶다'는 열망이 역설적으로 우리를 가장 '못 살게' 굴고 있는 셈이다.


나 역시 이 함정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할 일 목록부터 확인하고,

저녁에는 '오늘 뭘 했지?'라며 스스로를 채점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럴 때마다 의식적으로 멈춰 선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가?"

혹은 "무엇을 증명하고 싶어서 이렇게 달리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불편하다.

답을 찾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잠시 머물러보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과, 불안 때문에 붙들고 있는 것의 차이가.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은 죄가 없다.

다만 그 마음이 '속도'에 매몰되지 않도록 가끔은 브레이크를 밟아주어야 한다.

속도를 줄여야만 비로소 풍경이 보이고, 풍경이 보여야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급할수록 필요한 건 더 빠른 발걸음이 아니다.

지금 내가 딛고 있는 땅을 제대로 느끼며 서 있는 감각이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이 질문을 남겨본다.


"나는 오늘, 잘 살기 위해 달렸는가, 아니면 불안에서 도망치기 위해 달렸는가?"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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