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말하지 않아도 알았고, 깊어진 만큼 어긋남의 시작이기도 했다

by 후우




우린 말이 필요 없었다.

좋아하니까, 상대에 대해 궁금해지고, 살피고, 연구하게 된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어느 순간 너를 너보다 더 잘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반대로, 네가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너의 말버릇, 표정, 눈짓까지 내 언어 되었고,

무슨 말을 하든 그 진짜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던 시간들.

그때가 유난히 행복했던 것 같다.


너의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에도

그 표정을 보고 ‘오늘 힘들었구나’ 하고 다 알아버렸다.

누가 그랬냐며 내가 먼저 씩씩대면,

너는 조심스럽게 오늘의 일을 꺼냈고,

“어떻게 알았어?” 하고 웃으며 묻던 너에게

“그냥, 너니까”라고 대답하던 우리가 생각난다.

말이 필요 없는 감정이었다.


우리는 자주 통했다.

어떤 날은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고,

어떤 날은 네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헐, 나 지금 너한테 연락하려던 참이었는데!” 하는 말은 늘 동시에 나왔다.

같이 누워 있다가 동시에 “우리 뭐 먹을까?” 하고 웃던 날도,

각자 이어폰을 끼고 있다가 “이 노래 좋지 않아?” 하고 물었는데,

이미 서로의 플리에 있던 날들도 있었다.

이런 순간들이 우리를 매일 조금씩 더 사랑하게 만들었다.


함께 걷는 걸음도 점점 닮아갔고,

서로 다른 키에도 자연스레 보폭을 맞췄다.

비슷한 포인트에 웃는 우리를 보며

사람들이 "진짜 닮았다"고 하면, 괜히 뿌듯했다.


나도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잘 몰랐는데,

너는 기가 막히게

내가 좋아하는 걸 참 잘 알아냈다.

어딜 갈 때면,

휴게소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꼭 들렀고,

‘한 입만’ 먹는 걸 좋아하는 나를 위해

다양한 요깃거리를 사 오곤 했다.

식당 자리부터 집에서의 루틴까지,

우리는 항상 서로를 먼저 챙겼다.

내가 너를 안쪽에 앉히면,

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먼저 집어주었고,

함께 장본 뒤, 요리를 시작한 네 곁에서

나는 냉장고를 정리하고 마실 것을 챙겼다.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맞춰지는 일들이,

어느새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던 사이.

그건 내가 상상하던 이상적인 친밀감의 형태였고,

우리는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이런 교감이 너무 익숙해서,

어느새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내가 뭘 이야기해도

네 반응이 예전 같지 않을 때가 생겼다.

예전엔 내 사소한 농담에도 웃던 네가,

그날은 그냥 휴대폰만 보며 '응' 하고 말했다.

순간, 멈칫했다.


아무리 가까워도,

서로의 모든 순간을 함께할 수는 없으니까.

각자의 시간 속에서

쌓이는 감정과 생각은 달라지니까.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순간들이었다.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들이라

애써 그건 나의 착각이라고,

우린 너무 잘 통하니까—괜찮다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곤 했다.

그건 사실상 예고된 침묵이었는지도 모른다.


"괜찮아?" 하고 물어도,

"응, 괜찮아" 하는 대답 속에서

예전과 다른 무언가를 느낄 때가 있었다.

내가 놓치고 있는 네 마음의 어떤 부분들이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던 그쯤이었을 거다.

우리가 그토록 자랑했던 '무언의 교감'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아마도, 내가 널 잘 안다고 믿었던 게,

너는 변하지 않을 거라는

착각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분명 서로의 언어였고,

서로의 마음이기에,

네 작은 변화들도, 하루하루 쌓이는 피로들도

내가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너 역시 마찬가지였겠지.

우리는 여전히 사랑했지만,

어느새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완벽하지 않은 방식으로—서로를 이해하려 했었다.

때론 어긋나기도 했고, 침묵이 길기도 했지만,

결국엔 다시 말을 걸고, 서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조차 우리만의 방식이었다.

완벽하게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게 우리의 오랜 사랑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득한, 반짝이던 시간이었다.


정말 모든 걸 알았던 걸까,

아니면 알고 있다고 믿었던 걸까.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서로를 다 안다고 믿었던 확신이,

사랑의 시작이자 동시에 그 한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툴고 어설펐지만,

그 믿음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닿으려 애썼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문득,

그때의 따뜻함이 마음 어딘가를 간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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