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이지만 어쩌면 우리이야기
"코로나 19 이전의 세상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한 달 전쯤 인가 뉴스를 보고 있는데 아나운서가 내던진 말이다. 그때는 ‘으..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조금 섬뜩하게 들렸던 것 같다. 응? 내 코로나 이전의 세상이 어땠었지? 소파 한 켠에서 턱을 괴고 코로나 이전을 떠올렸다.
처음 코로나 19에 관련된 뉴스를 본 것이 기억난다. '생전 처음 듣는 중국 우한이란 곳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하였다.' '바이러스 보균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에 우한에 사는 한 교환학생이 방문하였다.' 문구들을 보면 긴박해 보이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렇지 않았다. 메르스나 사스 때 수준으로 짧게 그칠 바이러스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뉴스에서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연일 보도하며 세계로 뻗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 순간까지도 순진하게 바라봤던 것 같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 일은 아니다.’라는 생각.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피해자가 죽어 나갔다. 사람들은 탓을 하며 싸우기 시작하였고, 확진자가 나온 지역은 유령도시가 되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그 이후로 일상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사람들은 집에서도 일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도서관이나 은행 등은 아크릴 벽이 생겨 반대면적인 형태의 어떤 것들이 생겨났다. 고등학생들은 오늘 에서야 등교에 첫 발을 뗐다고 뉴스에서 연일 보도하고 있다. 나는 긴급재난지원금이라고 나라에서 공돈을 주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나에게는 낯선 만큼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는데, 공돈이라고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진정한 변화는 내 주위 사람들의 변화다. 많은 건 아니지만 실직을 한 친구도 있고, 무기한 유급휴가를 받는 친구도 생겼다. 나는 그런 친구를 위해 '00표재난긴급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치킨 기프트콘을 보내주기도 했지만, 그들의 걱정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위의 짧은 글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이런 변화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나는 참 어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아직은 모든 사실과 현상에 대해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변화라는 것은 쉽게 오지 않는 것을 안다.
코로나 이전의 세상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면 지금과 행복의 정도는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몰라도, 조금 더 실체적인 경험이 가득했던 건 분명하다. 지금과는 생의 맛을 비교할 수 없지 않을까. 비교적 자유로웠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전에는 누군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그 사람만의 문제였고, 친구들과 부둥켜안고 헤드락을 걸면서 신나게 거리를 쏘다닐 수 있었다. 신나게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야구장에 가서 응원을 하면서 많은 관객들과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소리 지를 수 있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스크린으로 대체되었다. 사람들 과의 직접적 접촉이 주는 맛을 잃어버린 것이다. 마스크가 사람들의 미소를 가렸듯이, 스크린으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현장감이 가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류는 앞을 내다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밟아보지 못한 길을 두드려보며 살펴 가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그 길의 선두권 언저리에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 긴장감도 함께 체감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모든 개인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해 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조금 더 한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다정한 시선과 관심을 주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나은 일상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스크 위 시선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결국 함께 이겨내야 한다. '나'가 아니고 '우리'라는 연대의식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울 때 손을 잡으면 걱정이 가라앉듯, 비대면적이면서도 마음을 다해주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더는 삭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