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었던 무례한 질문
지원금을 받기 위해 공기관을 찾았다. 미리 연락을 통해 예약을 잡고 가야 하는지는 몰랐는데, 전화했던 담당자와 약속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챙겨야 할 서류들이 많고 지속적으로 지원금을 받는 거라 담당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더불어, 담당자분과 상담도 이어나가는 일종의 서비스도 있었다. 나는 의사 선생님과의 첫 상담에서도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던 터인지라, 공공기관 사람과의 사적인 대화는 더더욱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원금을 받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웬 걸, 가자마자 나는 우울증 척도 테스트지를 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거짓말로 하기엔 병원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지원을 받지 못할까 솔직하게 검사를 이어나갔다. 당시 돌이켜보면 내 우울증이 최고치였던 것 같다. 결과는 처참했다. (정신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좀 더 자기 연민에 빠졌던 것 같다.)
나와 통화를 한 담당자분은 자리에 계시지 않았고, 다른 분께서 부랴부랴 나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작성해야 할 서류들과 챙겨야 할 것들, 부가적인 사은품들을 챙겨주셨다. 본인의 담당자가 아님에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게 감사하려던 찰나, 갑작스러운 질문이 들어왔다.
굉장히 우울한 상태시네요. 검사지를 보니까 자살 생각을 하거나 실제로 시도했다는 내용에 체크가 되어있는데 생각했던 자살 방법을 얘기 보실래요?
네? 나는 눈이 동그랗게 떠져서 되물었다. 나의 반응에 담당자 분도 조금 머쓱했는지, 예시를 들어주셨다.
자기가 자살할 옥상에서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았거나, 실제로 줄을 사서 목에 매 보셨다는 분들도 계세요. 체크가 되어있으시길래...
아니, 어떤 대답을 듣고 싶은 거지.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또 내가 누구냐. 어벙 벙하게 또 묻는다고 대답했다. "아 저는 그냥, 집에 있는 넥타이로.."라며 그걸 또 대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화를 내고 왔어야 하는데 싶었다.
남의 아픔을 예시로 들어주는 것도 어이가 없었다. 다른 우울증 환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자살 시도를 했는지 우울증 환자에게 말하다니. 무슨 의도인가. 뭐 얼마나 우울한지를 자살 방법으로 판단하려는 건가. 무슨 심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벙 벙한 대답을 한 후, 나는 점차 침착해지며 화가 났다. 이 사람이 전문 상담사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첫 만남에 그렇게 오픈된 장소에서 실례되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게 화가 났다. 무엇보다 그걸 대답한 내가 무척 후회된다.
나머지 얘기들은 서류와 관련된 거라 무례한 내용은 없었지만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나는 빨리 그 자리를 뜨고 싶었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
"우울감이 높아서 담당자 선생님 오시면, 지속적인 상담도 가능한데 받아보시겠어요?"
"아니요. 제 얘기하기 싫어서요."
그제야 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내 담당 선생님은 이 분과 또 다를 수 있지만, 이미 공기관에 실례를 잃은 상태였다. 나쁜 의도로 말한 게 아닌 걸 알지만, 그런 분이 담당자라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음에도 지원금을 받기 위해 나는 공공기관을 찾아가야 한다. 그때는 더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며 서류만 제출하고 올 것 같다. 지원금이 입금되어 그나마 경제적인 부담감은 덜하지만, 우울증과 관련된 안 좋은 기억은 하나 더 추가된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