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트

배가 따끈 마음은 더 따땃

by 곰곰

회기역 1번 출구 앞에는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토스트 노점이 있다. 학부시절 학생회 활동을 하느라 경희대에 오갈 일이 많았던(그러다 이 동네에서 살게 될 줄이야…) 나는 할머니의 가게 앞에서 자주 식사를 했다. 천 원, 주머니가 가벼운 누구나에게 할머니의 천 원짜리 토스트는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 요긴한 한 끼였다. 그전엔 600원인가 했다던데 기억이 잘 안 난다.


나는 토스트를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의 요리 과정을 보고 있는 것이 좋았다. 먼저 철판에 마가린을 동글동글 발라 레몬색 원을 만든다. 그 위에 식빵을 올린 후 한 번씩 톡톡 눌러주고, 챱챱 채소가 들어간 달걀물을 휙휙 저어서 지단을 부친다. 식빵과 햄과 지단을 한 번씩 뒤집어주다가 설탕 넣어줄까 묻는다. 좋아요~ 말씀드리면 달걀지단 위에 설탕을 뿌리고 그 위에 케챱을 주르륵 뿌려서 바삭 노릇 하게 구워진 식빵 위에 얹는다. 그리고 토스트를 살짝 말아서 종이컵에 넣은 후 짜잔! 내 손에 쥐어지는 맛있는 토스트! 침이 꼴깍 참말로 행복하당게~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가격을 올리지 못했던 할머니가 2020년엔가 마지못해 올린 가격은 1500원이었고, 코로나 이후 물가 폭등으로 인해 조금 더 올린 현재의 가격은 야채토스트 2000원 햄토스트 2500원이다. 식빵, 달걀, 햄, 채소, 케챱, 설탕, 마가린, 종이컵, 물값, 가스값 그리고 할머니의 노동을 얼추 셈해보면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이 가격은 말이 안 되는 가격이다.

할머니는 한번에 최대 6개까지 토스트를 구워내는데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 때가 많다

이 가게의 특별한 점은 가격만은 아니다. 할머니는 늘 우리를 왕자님 공주님으로 불러줬다.(다만 단골은 이름으로 “OOO이” 이렇게 ‘이’를 붙여서 부름) 이쁘다고 해주고, 귀하다고 해줬다. 맛있게 먹고 힘내라고 응원해 줬다. 그래서 토스트를 먹고 나면 배가 따끈해지고 마음은 더 따땃해지곤 했다.


할머니 토스트가 특별히 맛있는 토스트라 할 순 없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토스트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의 재료라 해도 그 재료 상태가 별로였던 적은 없었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늘 그 자리에서 토스트를 굽던 할머니. 세상에 별의별 잘난 사람에 멋진 것들이 많아도 결국엔 변함없이 꾸준히 뭔가를 하는 것이 제일 어렵고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나이가 되니, 문득 내 나이만큼 할머니도 연세가 많이 되셨다는 것과 할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그 세월 동안 이 노점을 지켜왔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런 할머니가 요즘 몸이 편찮으셔서 가게를 한참 쉬셨다가 최근에는 드문드문 문을 열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여전히 회기역 1번 출구 앞에서 할머니가 토스트를 굽는 모습을 구경하며 아침을 시작하고 싶다. 가끔 오뎅국물을 마시면서 민주당이 어쩌니 국힘이 어쩌니 구청장이 어쩌니 몇 마디 쏟아놓으면 할머니가 “그려 그려 못된 놈들이구만 그려” 하면서 맞장구쳐주는 말을 듣고 싶다.


주말엔 절에 가야겠다. 가서 ‘할머니 건강하세요’ 기도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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