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을 수 없는 젊음이니 한잔 먹세그려
가전주라고 하기에는 좀 전통이 짧지만 우리 집엔 설, 초파일과 추석 때 빚어서 마시는 술이 있다. 이름은 불로초. 탁주다.
외할머니는 수도승이었다. 당신이 드시는 음식은 식재료에 거의 양념이나 조미를 가하지 않고 소박하게 드셨는데 사람들에게는 음식과 술을 넉넉하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셨다. 특히 불로초는 그 맛과 향이 썩 괜찮아 인기가 좋았다. 말하자면 도량의 불자들에게 있어 일종의 시즌 한정 보상템 같은 존재였는데 그 이벤트를 위해 나는 절기마다 절(이라고 쓰고 집이라고 읽는다)에 가서 나무를 했고 물을 길어다 올렸다.
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봄날, 법당 앞마당에 누워서 볕을 즐기고 계시던 외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 이 술은 왜 이름이 불로초인가요?"
"너도 여기 와서 누워봐라"
"할머니 누룩은 어떻게 띄우는 거예요?"
"하늘이 참 파랗구나, 좋지 않니?"
"할머니 물은 어느 정도 비율로 해야 해요?"
"별스럽게 살려고 발버둥 칠 필요 없는 것을..."
"할머니 향은 어떻게 내요? 뭔가 섞어요?"
"요즘 만난다던 그 처자랑은 잘 돼가니??"
"어(뚝)"
보통 외할머니에게 뭔가 물었을 때 외할머니는 그냥 바로 답을 해주시는 경우가 없었다. 내가 느끼기엔 당신께서 필요하고 적절한 때라고 생각하셨을 때 답을 해주셨던 것 같다. 이야기가 허무하게 흩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셨으니까. 내가 술 빚는 법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3년이나 지나서였다.
배추를 뽑는 일이든 톱질을 하는 일이든 나무에서 감을 따고 산 아래로 내려가 손님을 맞아 안내하는 일이든 짜증을 내거나 한숨을 쉬지 않고 하게 되었을 때, 텃밭 끄트머리에서 지팡이를 짚고 앉아 눈을 감고 계시던 외할머니는 옆에 잠깐 앉아보라 하셨다.
“세상에서 제일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젊음이니 기왕 취하는데 불로초만큼 좋은 술 이름이 어딨겠니.”
"불전에 올린 밥에는 향이 스며들어서 자연히 좋은 향을 가진 누룩이 된다."
"누룩은 자주 들여다보지 말고 석 달은 말려야 한다."
"물은 반드시 용왕전 샘터에서 길어서 쓰도록 하려무나"
"이 모든 과정에 정성을 들이고 나쁜 마음을 섞지 말어라. 힘들어서 나쁜 마음을 먹을 것 같으면 그럴 때는 술을 빚지 말아라.”
“마음 같이 가벼운 것도 없고 또 무거운 것도 없느니라.”
그날 처음 나는 술을 거르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우리 집 술은 발효가 끝난 술밑을 건조 냉장보관한 후 그 덩어리를 체에 올리고 샘터에서 길어온 물을 부어 만드는 방식으로 만든다. 일반적으로 막걸리를 액체 상태의 술밑을 걸러서 만드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왜 이런 방식으로 만들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술밑을 덩어리로 보관하는 것이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술을 우려먹기 용이했기에 그렇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일종의 막걸리 티백? 막걸리 키트? 이런 개념이라고 해야 하나.
만드는 방식이 다르기에 불로초는 보통 막걸리에 비해 신맛을 보드랍게 감싸주는 단맛이 고급스럽다. 쨍하고 경쾌한 야쿠르트보다는 푸근하고 차분한 요거트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질감도 약간 걸쭉하다. 불로초가 뽀얗고 싱그러운 얼굴을 내밀 때 그 막 올라온 한 모금을 마시면 손가락 끝부터 온몸이 찌르르 신이 난다. 텃밭 열무로 담근 아삭한 김치에 뽀송뽀송한 가지볶음을 안주로 곁들여 먹으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득해진다. 이래서 불로초일까.
이번 초파일에는 지난겨울에 띄워 둔 누룩으로 불로초를 빚을 생각이다. 절 울타리도 좀 손보고 길 정리, 텃밭 정리도 깨끗이 하고. 외할머니가 살아계셔서 지금 내가 빚은 술을 드신다면 어떻다 하시려나. 보고 싶은 외할머니, 그리운 외할머니의 불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