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상트페테르부르크 편 #3
처음 맞는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아침. 북반구 끝자락에 있는 곳에서 유명한 것이 여름철 '백야' 현상이다. 지구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고 태양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반면에 겨울철에 들어서면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극지방에선 밤이 지속되는 현상을 '극야'라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극지방에 있지 않아서 해가 뜨긴 하지만 겨울철에는 굉장히 짧게 해가 뜬다. 이런 단어는 없지만 나는 '흑야'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겨울에 아침 8시 전에는 해가 뜨는데, 빼쩨르는 그렇지 않았다. 아침 8시 즈음 일어났지만 세상은 온통 흑색이었다. 처음 겪는 이 느낌, 나와 일행들은 아직도 새벽인 줄 알고 잠을 더 청할뻔했다. 씻고 준비해야지. 오늘은 하루 종일 내가 가이드 아닌 가이드를 하는 날이다. 상트로 떠나기 전 너무 설레서 이 도시 공부를 많이 했는데, 하나씩 봤던 내용이 떠올라 모두에게 풍성한 여행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 아나톨 프랑스
나는 평소에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침만 먹으면 속이 안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행만 오면 꼭 아침을 챙겨 먹는다. 눈을 뜨면 배고프고 왠지 속을 든든히 채우지 않으면 지칠 것만 같다. 또, 희한하게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안 먹고, 로컬 레스토랑에서 꼭 먹는 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튼 우리는 숙소에서 나와 눈 앞에 있는 맥도널드로 들어갔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엔 카자흐스탄에 맥도널드가 없었다. 오로지 버거킹과 KFC만 존재했을 뿐. 대학교 다닐 때 2교시 수업이 있으면 종종 먹었던 맥모닝 세트 생각이 났다. 다들 나와 비슷했는지 아무도 토를 다는 일행은 없었다. 나는 일반 맥모닝 세트를 주문했다고 생각했는데 두 겹 패티가 나왔다. 이것이 러시아 대륙의 클래스인가! 아침부터 먹는 소고기 패티 두 개는 고기의 느끼함 대신 빼쩨르의 아침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포근아, 오늘 일정이 어떻게 돼???"
"응, 그냥 나만 믿고 따라와."
'나믿가믿',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들어봤던 단어. "나는 믿는다, 가코(Garko)를 믿는다"란 말을 하면서 '믿음의 야구'를 시전 했던 現 LG 트위스 감독, 류중일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가코란 용병에게 했던 얘기다. 비록 가코는 너무 못해서 퇴출됐지만, 류 감독의 자신감과 믿음이 돋보이는 말이다. 나는 자신 있었다. 완벽한 여행을 만들어줄 Maker가 될 것이란 자신감. 당시 나는 누군가를 리드하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말로써 전달한다는 것, 이게 나는 너무 좋다. 오늘의 목표는 걸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한 바퀴다. 계산을 해보니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고도 빼쩨르의 주요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것은 모두 남자라서 계산이 가능했던 계획이었다.
'아직 시간은 10:20 A.M.'
강력한 대륙의 추위는 이날 아침에도 맹위를 떨치고 있었지만, 강력한 무기 군고구마 장수 모자를 뒤집어쓰고 맥도널드 밖을 나서본다. 아직 시간은 오전 10시 20분이다. 그런데 왜 아직 여기는 밤일까? 러시아 축구 리그가 다른 유럽과 달리 왜 추춘제가 아닌 춘추제를 선택했는지 알 것 같다. 춥기도 춥지만 긴 밤의 여파로 관중들의 에너지가 선수들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만 같다. 우리 일행은 모두 러시아가 처음이라서 길가다 흥미로운 게 보이면 그 자리에 서서 열심히 구경을 한다. 특히 일반인에게 오픈된 자그마한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있었는데, 마치 절에 온 것처럼 상당히 경건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기념품점에 들어가면 푸틴을 소재로 만든 상품이 많았는데, 말로만 듣던 푸틴의 제국에 왔음이 실감 났다.
'빼쪠르는 계획도시다, 그래서 길이 단순하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은 길이 복잡하다. 지형상으론 산이 많고 평지가 거의 없어서 도시로 발달하기 힘든 곳인데, 6.25 전쟁으로 인하여 피란을 온 인구가 급격하게 유입되어 반강제로 도시가 됐다. 피란민들이 그 좁은 곳에서 판잣집을 짓고 마을과 길을 형성했기 때문에 꼬불꼬불한 골목도 많고, 차선이 넓은 도로도 많지 않다. 그래서 정말 운전하기 힘든 곳이다. 그렇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에 의해서 계획적으로 건설된 도시라서 길이 정말 시원시원하게 뚫려있고 복잡한 골목이 없었다. 빼쪠르를 여행함에 있어서 단 한 가지 '넵스키 대로'만 잘 따라가면 길을 잃을 걱정이 없다. 그래서 여행하기 좋았다. 다만 정말 길이 길었을 뿐이었다.
운하의 도시답게 운하길을 중심으로 양 옆엔 유럽풍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TV와 사진으로만 보던 유럽풍 건물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처음 여행을 준비하면서 구소련 이미지 덕분에 칙칙한 건물이 많을 것이란 생각과는 다를 것이다란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보니 더 새롭게 와 닿았다. 그렇다,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그리고 이에 정점을 찍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러시아 '카잔 성당(Kazan Cathedral)'이다. 마치 이탈리아 로마로 초대받은 것 같은 느낌이 났다. 실제로도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본떠서 건설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당의 규모가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컸다.
'Лучше один раз увидеть, чем сто раз услышать.'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더 낫다.) - 러시아 속담 中
해도 늦게 뜨지만 날씨까지 흐려서 11시가 다 됐지만 아직 도시는 어둡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넵스키 대로를 따라서 다음 목적지 '성 이삭 대성당(Isaac's Cathedral)'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눈알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이곳의 풍경을 각자의 방식으로 최대한 담아내고 있는 중이다. 카잔 성당을 보고 이동하려는 찰나 건너편에서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건축물 하나가 보인다.
"얘들아, 저기 보이는 곳은 일명 빼쪠르의 테트리스 성당인 '그리스도 부활 성당'인데 별칭이 있어. '피의 구원 사원'이라고 하는데, 피의 사원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제정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해서 죽은 곳이라서 그래. 그런데, 저기까지 지금 안 갈 거야. 나 따라와. 우린 지금 여기 말고 갈 곳이 있어."
갑자기 일행 중에 한 명이 내게 한 마디를 한다.
"이야~ 장난 아닌데? 이 정도면 거의 전문 가이드 수준이잖아? 너 진짜 잘 어울린다. 전문가....이드.... 음.... 전.....문가... 그래! 너는 오늘부터 '문가(MG)'야 문가. 이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투어는 '문가 투어'하자."
남자들 특성 중에 하나는 하나를 물면 늑대처럼 잘 몰아간다. 갑자기 모두가 몰아가면서 동의한다. 응....? 난 이렇게 갑자기 별명이 생겼다. 그리하여 카자흐스탄 교환학생 친구들은 이날부터 나를 이름 대신 문가라고 불렀으며 나와 같이 어딜 가면 문가 투어 가자고 하곤 했다. 비록 몇 번 함께 문가 투어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몇 번 없었지만 말이다. 좀 황당했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만큼 내가 가이드 역할을 잘하고 있단 얘기겠지?', 그렇게 나는 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몸이 꽁꽁 언 우리는 잠시 카페에 들러 러시아 전통 차(茶)를 한 잔씩 하면서 몸을 녹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
'성 이삭 대성당(Sainit Isaac's Cathedral)'
드디어 오전 문가 투어 최종 목적지, 성 이삭 대성당에 도착했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더 그 규모가 매우 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부 어느 방향에서도 이 성당이 보인다. 그리고 이곳은 전망대에 올라 빼쪠르 도심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그렇지만, 이날은 운이 없게도 전망대 운영을 하지 않아서 볼 수 없었다. 아쉽지만 '가는 날이 장날'인 것을. 대신 대성당 전체 정면 모습을 다 담을 수 있는 곳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게 있다. 바로 '황금색 돔(Dome)'인데, 저것은 실제 황금이라고 한다. 이 지붕을 만들기 위해서 100kg이 넘는 황금이 들어갔다고 하니 대단할 따름이다. 이렇게 인증샷을 찍고 트립 어드바이저의 도움을 받아 어느 피자 가게에 들어갔다. 미국식 피자라고 해서 우리나라 도미노 피자 같은 토핑을 기대했건만, 당황스러울 정도로 심플했다. 하지만 맛은 괜찮았고 에너지를 충전한 우리는 빼쪠르 여행 1일 차 2막을 열었다.
여기까지는 맛보기다. 이후부터 정말 우당탕탕 너무 어이없고 아찔한 에피소드가 발생했다. 예를 들어, 발병이 난다든지 소매치기를 만난다든지 등등. 일단 여기까지 글을 줄이고 천천히 풀어 나가 봐야겠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진짜 문가 투어는 이제 시작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