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한강에서 먹는 치킨

by ㅎㅎ

어느덧 올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오늘 저녁에 태풍 '바비'가 온다고 하는데, 초대형 강풍이 불 예정이라고 해서 걱정이 많이 된다. 2020년 경자년은 1월 달 코로나부터 시작해서, 장마, 태풍까지... 정말로 다사다난한 한 해인 것 같다. 나는 이 한 여름에도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다니고 있다. 오히려, 마스크 쓰는 것은 불편함이 없고... 마스크 때문인지, 철저한 손 씻기 덕분인지 오히려 환절기에 늘 달고 다니는 감기가 오지 않았다. 다만, 혹시나 걸려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지 늘 걱정이다. 그리고 계절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이번 해를 그냥 보냈다는 것이 아쉽다. 봄놀이만 포기하면 이 맘 때쯤이면 당연히 종식될 것이라 생각했다. 나에겐 제대로 여름이 됐음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이 있다. 팥빙수, 오이냉국과 같은 여름 대표음식이 아닌 의외에 음식인데. 바로, 치킨! 그것도 한강에서 먹는 치킨 말이다. 내가 다닌 대학교는 여의도 한강 공원과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한강에 치킨 먹으러 간 적이 꽤 많다. 졸업하고도 학교 다닐 때 한강에서 치킨을 좀 더 먹을걸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한 데에는 그 이유가 있다. 생각처럼 한강에서 치킨 먹을만한 날씨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어련히 따뜻한 봄 즈음이면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차가운 강바람에 봄에는 어림도 없다. 초여름에 갔다가 추워서 치킨 시키기를 포기한 적도 있다. 강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그런 여름에 가야 한강에서 치킨을 먹을 수 있다. 비도 오지 않아야 하고 미세먼지도 적어야 하니까... 그런 날은 그리 흔하지 않은 셈이다. 졸업하고 나선 한강에서 치킨을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주문할 때 배달의 민족 어플을 쓰지 않을까 싶은데, 나 때엔 여의도 한강공원에 도착하자마자... 치킨, 중국집 배달 전단지를 한 움큼 받을 수 있었다. 그 많은 전단지 중에 주문할 곳을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아마, 네네 순살치킨을 많이 시켰던 것 같은데.. 좋은 날씨에 주문한 치킨까지 맛있다면 최고로 행복한 하루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좋은 공연을 만나는 것도 한강에서 치킨을 먹는 것만큼이나 귀중한 경험이다. 요즘은 코로나 19 때문에 예술의 전당과 세종문화회관과 같이 큰 공연장은 물론이고 소규모 공연장도 계획된 연주가 대부분 중단 상태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맞기 전까지 우리 손엔 무수히 많은 공연이 선택지로 주어졌다. 가끔 예술의 전당에 연주 팸플릿을 모아 논 곳에서 이번 달엔 어떤 공연이 있나 살펴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많은 연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니.. 하며 놀랄 때가 있다. 연주자들은 그 모든 연주회를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연주하는 순간 최선을 다해 연주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연주가 가치 있다. 하지만, 나에게 감동을 주는 연주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예술가가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그 작품이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예술이 어렵고 노력보다 재능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튼, 감동을 주는 연주회를 만나는 건 청중 입장에서도 귀한 경험이고, 한강에서 먹는 치킨만큼이나 날마다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11년엔가 예술의 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가 있었다. 저녁 8시쯤 연주였던 것 같은데, 나는 그의 팬은 아니었으나 그냥 보러 갔다. 그날 어떤 프로그램을 연주하는지도 모르고 갔다. 연주회장에 들어가서 안 사실인데, 그는 베토벤 마지막 소나타 3개 Op.109, Op.110, Op111을 연주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인터미션 없이 연주할 것이라고 했다. 인터미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는 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그 세 곡을 이어 연주했다. 이것은 매우 드문 연주회였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연주하는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잠시 우리를 시공간을 초월한 다른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그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고,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나와서 로비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다들 상기되어 있었다.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한강에서 치킨을 먹는 것, 그리고 좋은 공연을 찾아가는 것... 이런 것들을 소소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소소하게 행복하기도 쉽진 않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순간을 마주할 때 충분히 즐기고 누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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