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윤지영)
나와 함께 '독서' 수업을 꾸려가고 있는 H는 이 년째 기간제 교사로 근무 중이며 올해는 2학년 담임이다.
작년 겨울에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하필 업무가 몰려드는 시기라 그녀는 마음놓고 병원에 가지 못했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의 치료와 관리는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진료만으로 버텼다. 만약 그녀가 병가를 썼더라면 같은 부서 사람들이 그녀의 업무를 조금씩 떠안아야 했을 것이다. 다들 자기 업무만으로도 바쁜 학기말이었고, 그 사실을 잘 아는 H는 성실하게 출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파도 전혀 쉴 수 없거나 겨우 응급처치만 하고 출근하는 일쯤 누구나 겪는다고, 나는 그녀의 행보를 보며 '안타까운 일이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몸은 좀 어때요?"하고 묻는 게 다였다.
한 달 전, 여름방학을 끝내고 돌아온 그녀가 자꾸 '밥 한번 먹자'고 했다. 시간만 맞으면 언제든 함께 밥 먹는 사이니까 예사로운 제안이었다. 이상하게 자꾸만 어긋나는 스케줄을 겨우 맞춰 드디어 밥을 먹었을 때, 그녀가 고백했다.
위암 초기라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검진을 갔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정말 다행으로 위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만으로 치료가 가능하고, 항암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얼마나 절제하느냐고 물으니, '그건 열어봐야 안다'라고 했다.
대화를 나눈 그때로부터 수술 날짜인 10월 2일은 삼 주쯤 남아 있었다. 수술을 좀더 빨리 당길 수 없냐 물으니, '시험 진도가 아직 남았고, 연휴 직전에 수술해서 열흘 동안 쉴 수 있어 딱 좋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연휴 끝나고 운전이 돼요? 수업이 가능하겠어요? 죽만 먹어야 한다면서 무슨 체력으로? 관리에 집중해야 하지 않겠어요??"
나도 이년 전에 자궁내막증 수술로 한 달 병가를 쓴 적이 있다. 큰 수술이 아니니까 일주일 이상의 병가는 불필요 할 것 같은데, 주변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한 달 병가를 썼었다. 회복에 훨씬 도움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년이 지나 입장이 바뀐 나는 H의 상황을 열심히 '걱정'만 했다.
병명을 학교에 알리고 싶지 않다는 선생님의 의사를 아낌없이 '존중'했다.
병가를 썼던들 아무도 탓하지 않고, 제도도 뒷받침 되어 있고, 관리자의 인성도 좋은 편인 학교이지만,
기간제 교사라서 더욱 병가 쓰기가 망설여지는 그 마음을
깊이 '짐작' 하기만 했다.
내가 정교사라서, 기간제 교사인 그녀에게 병가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모양새가 자칫 '철없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다. 도와주고 싶지만 적당한 사회성을 지닌 동료 교사이고도 싶었다.
연휴를 이틀 앞두고, H는 입원을 위해 병가를 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열흘 남짓의 시간만으로 큰 수술 뒤의 회복이 충분할 리 없다. 내가 좀더 일찍,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움직이자는 생각으로 학년 부장과 교감을 찾아갔다. 복무 신청은 본인이 직접 해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내가 학교에 귀띔을 해 둔다면 H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에 부담이 덜어질 것 같았다. 또, 나 혼자만의 설득으로 H가 부담을 내려놓기 어려울 것은 뻔하니 , 학년 부장과 교감선생님이 '학교 걱정 말고 선생님 몸 돌보시라'라는 메시지를 전했으면 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H는 끝까지 병가 신청을 거부했다. 교감 선생님은 깊이 안타까워 하시면서도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한다'는 원칙 앞에 더는 움직이지 않으셨고, 학년 부장님은 "병가까지 필요하지 않다"는 말에 추가적인 설득없이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나의 병가는 쉬웠는데,
그녀의 병가가 어려운 이유는 무얼까.
병의 경중으로 따지면 누가 봐도 그녀 쪽이 무겁다.
단지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과 부담감의 차이일까?
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한 사람의 성향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또 다른 기간제 선생님이 얼마 전 겪었다는 사건도 떠오른다. 담임반 학생에게 폭행을 당했는데, 교권 보호 병가를 내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담임반 학생이므로 조종례만 해도 하루 두 번씩은 꼬박꼬박 마주칠 텐데, 감정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폭력적인 공간에 매일 노출됐다.
병가를 쓰게 되면 부담임에게 담임 역할을, 동교과 선생님께 수업을 부탁해야 하는 민폐가 기본으로 수반된다. 게다가 누군가는 교육청으로 이 사안을 보고하는 수고를 해야할 테고, 여러 번의 공문이 오갈 것이고, 그 과정에 교감과 교장의 결재를 득해야 함은 물론이고....
교권 보호 병가를 쓰지 못한 것이 선생님 개인의 성향 때문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성인으로서 자기 일에 목소리를 내는 일이 당연하지만,
그 일이 특별히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은 사람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데 익숙한 사람도 그러하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로 사는 일은 '착취에 익숙해지는 것'과 동의어다. 나라가 착취하고, 관리자가 착취하고, 끝내 자기가 자신을 착취하기에 이른다.
고용의 안정성에 따른 차이가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배우는 동안 자기 자신에 대한 돌봄과 권리 찾기를 배우지 못했다. 나 역시 그러했다. 점점 아픈 일이 많아질 수록 무엇보다 내 몸을 돌보아야 한다고 암기하듯 되뇌곤 한다.
이제 내가 배워야 할 일은 타인의 일에 목소리 내는 일이다. 어디까지 사회 생활이고, 어디부터 오지랖인지 경계가 어렵다. '자기 할일이나 똑바로 하지'라는 말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워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검열자의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메타포라의 이번주 주제도서인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을 읽으며 내가 처한 위치가 조금 부끄러웠다. '바깥의 노동 문제는 파헤치면서도 자기들의 노동 문제는 절대 다루지 않는(82쪽)' 방송국과 학교가 닮았기 때문이다. 나는 차별과 배제의 구조를 비판하는 문학적 장치를 가르치고 시험 문제를 낸 것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여겼지만, 정작 그 구조 한가운데 앉아 있었던 건 아닌지.
개인적인 친분의 정도에 따라 나의 관심과 개입의 정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다. 미루고 있던 교직원 노동조합 가입을 이제는 정말 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맨날 책만 읽어서 될 일이냐'라는 자괴감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